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다. 역사의 격동기는 책 속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바로 눈앞에서 흘러간다. 속도도 빠르다. 두 달이 채 안 된 4.27 판문점 선언이 벌써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DMZ 관광이 강조되더니 유라시아 대륙철도를 연결하자는 구상도 나오고, 당장 북한의 땅 속을 파서 광물을 캐낼 듯한 기대감도 하늘을 찌른다. 평화와 협력이라는 관념적 구호는 정전과 종전이라는 구체적 단어로 급속히 대치됐다. 멀리 내다보는 사람들은 동맹과 비동맹 문제를 벌써부터 고민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중립국 선언까지 거론하기도 한다.

앞에 놓인 길을 따라 곧게 나아갈 것 같던 일이 한순간의 사건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일은 역사 속에서 흔하다.

갑신정변의 현장에서 일본군이 그렇게 빨리 철수해 버릴 줄 누가 알았으며, 한때 남도를 장악했던 동학농민군들이 조선정부와 손잡은 일본군에 힘없이 사라져버릴 것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평양 천도 사업을 마무리하던 고려의 임금 정종이 갑자기 숨을 거두며 평양은 잊힌 도시가 됐고, 화성을 개척하던 조선의 왕 정조는 허무하게 생을 끝냈다.

역사는 항상 희망을 끝에 둔다. 마르크 블로크는 ‘역사학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고 했다. 역사학이 본질적으로 인간을 위한 학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역사는 오히려 낙관적일 수만은 없다. 여러 가능한 조건들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역사가 흘러가며 만들어놓은 결실은 모든 사람에게 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남북관계를 이끌어가는 주제는 군사 분야와 경제 분야다. 거시적 문제다. 남한과 북한, 두 나라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 두 분야가 안착한다면,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하기 위한 환경은 마련된 셈이다.

쉬운 문제는 아니다. 종전 선언은 감격스런 순간이다. 현 시대에 종전을 본다는 기대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종전 선언이 세상을 한순간에 확 바꿀 것 같지는 않다. 그 뒤를 잇는 과정도 순탄한 길만 걷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에 남한의 기업들이 들어간다고 해서, 혹은 미국의 자본이 투자된다고 해서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눈에 띠게 변할 것 같지도 않다. 거기서 얻는 결실이 누구에게 돌아갈 지도 지켜봐야할 문제다.

위와 같은 문제들을 생각할 때, 좀 더 우려되는 문제는 우리가 북한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기초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삽을 들고 땅 먼저 파겠다고 들이대는 건 오히려 황폐함을 가져올 수도 있다.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인천은 이런 문제를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가 북한 지역에 대해 배우고 아는 것은 전근대시대까지다. 근대 이후 변화는 잘 모른다. 북한 지역의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어떤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 사실은 적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북한의 현황도 미디어를 통한 피상적 정보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남한의 국민들이 북한의 역사와 현상을 공유할 수 있어야 오해와 오류를 막을 수 있다. 직접 경계선을 맞대고 있는 인천의 경우는 더욱 시급한 문제다. 인천에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빨리 양성돼야하는 이유다. 평화는 빨리 끌어안되, 그것을 맞이할 준비는 바닥을 다져가며 철저히 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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