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2018 여름호, ‘특집’으로 다뤄
재벌과 언론, 교회, 사법 권력 집중 분석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이 최근 발행한 ‘황해문화’ 2018년 여름호(통권99호)가 특집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감시와 통제’를 다뤘다. 여기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재벌과 언론, 교회 그리고 사법 권력을 말한다. ‘황해문화’는 이번 호에 앞서 특집으로 ‘공안(검ㆍ경과 국정원) 권력’과 ‘관료 문제’를 다룬 바 있다. 이번 특집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황해문화’는 이번 특집 기획 배경을 이렇게 전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 이르러 우리 사회는 민주적으로 ‘정당한 절차’에 의해 선출된 권력의 ‘부당한 통치’를 경험했고, 우리는 지난 두 정부를 거치면서 절차적ㆍ법적 정당성과 무관하게 민주정부인가, 반민주정부인가를 스스로 되묻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는 단지 대통령 개인의 성격이나 개성의 문제가 아니기에, 우리 사회의 통치체제와 그 이면에 감춰진 구조를 전면적으로 살펴봐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재벌기업의 정치적 지배 상황 극복해야”

특집의 총론에 해당하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글 ‘선출되지 않은 권력-한국 지배질서와 민주주의’는 한국사회의 지배질서가 어떤 식으로 작동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통찰하면서 특히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 만연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을 드러낸다.

과거에는 전쟁과 안보위기를 빌미로 억압적인 기구 즉 ‘국가 위의 국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했다면,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계급 위의 계급’으로 대기업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비가시적으로 모든 사회구성원의 일상을 관리하는 양상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자본주의의 금융화와 금융자본의 세계화로 초래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오늘날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압도당하고, 세습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압도하며 법 위의 권력이 존재하는 상황을 ‘전도된 전체주의’라고 부르는데, 한국 재벌기업의 독특한 통치구조는 그 전형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또,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는 과거 ‘국가 위의 국가’로 군림했던 억압적 국가기구와 ‘계급 위의 계급’인 재벌기업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두 권력이 존재했던 시기였고, 촛불시위는 사실상 선출되지 않은 두 권력의 횡포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서 “세계의 시민들이 촛불시위로 새로운 민주정부를 수립한 한국에서 희망을 찾고 있는데, 한국이 실질적 민주주의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재벌기업의 정치적 지배 상황을 극복하고, 사회구성원들도 내면화된 신자유주의 지배에서 벗어나야한다”고 강조했다.

“개헌으로 사법부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 이뤄야”

김동춘 교수의 총론에 이어, 서기호 변호사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사법부 내 사법행정권력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지난해 터져 나온 법관 블랙리스트 사건은 사법부 안에 어떠한 ‘선출되지 않은 권력’과 비민주적 요소가 도사리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삼권분립과 사법부의 독립이 명문화돼있으나, 대법원장과 대법관도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있는 구조 속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은 지켜지기 어렵다. 정치권력이 대법원장을 통해 재판에 개입하고, 사법부의 실질적 독립이 침해되는 중대한 사태 속에서 급기야 법관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서 변호사는 법원의 민주화 방안으로 법원 내부의 판사회의를 통한 내부 개혁을 주로 제기했다. 아울러 사회 갈등의 최종 심급에서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는 개헌을 통한 사법부의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이 반드시 이뤄져야한다는 점도 주문했다.

“종교, 사적 영역 아닌 공적 종교권력으로 인식해야”

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장은 ‘종교권력으로서 개신교’라는 글에서 우리 사회의 숨은 권력 중 하나인 개신교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권력이 됐는지를 살펴보고, 현재 종교권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의 대표적 사례들을 통해 교회 내부의 개혁과 함께 시민사회의 역할을 주문했다.

이 소장의 분석을 요약하면, 한국의 개신교회는 대단한 부흥과 성장기를 보냈다. 이는 미국을 모델로 한 기독교 국가를 꿈꿨던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시작해 여러 군사독재정권과 깊은 유착 속에서 기형적으로 급성장한 결과였다. 대형 교회가 탄생한 이면에는 부당한 국가권력과 밀착한 개신교회의 그늘이 있다. 대형 교회들은 막대한 돈과 다양한 기관, 시설을 보유한 권력기관이다. 이 종교권력의 성격과 작동 메커니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대기업들과 유사한 교회 세습이다.

한국의 개신교회 권력은 더 나아가 동성애에 대한 ‘호모포비아’와 ‘이슬람포비아’ 등 혐오를 유포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면서도 종교인 납세에 대해서는 끝까지 저항하는 등, 권위주의적 교리와 패권주의에 입각해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보여 왔다. 박근혜 탄핵 이후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태극기부대도 대형 교회 신자 동원과 광신자들, 새롭게 형성된 개신교계의 극우파가 만들어낸 사회적 산물인데, 극단적 친미주의와 짝해 공산주의, 동성애, 이슬람에 대한 극단적 혐오정치를 노골적으로 발동하고 있다.

이 소장은 “종교를 더 이상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닌 공적 종교권력으로 인식하고 심층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언론과 재벌의 혼맥으로 형성된 적폐 청산해야”

박주현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선출되지 않은 기업권력과 언론권력의 밀월’에서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의 문자를 통해 삼성과 언론의 유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그런 유착관계가 형성된 물질적 배경으로 언론과 재벌의 혼맥(=결혼으로 형성되는 유대관계)에 주목한다. 삼성을 중심으로 조ㆍ중ㆍ동과 정ㆍ관ㆍ법조계, 대기업들이 모두 연결돼있는 52개 재벌가의 혼맥을 보면, 한국사회는 민주공화국이 아닌 귀족정이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박 교수는 “이들이 혼맥을 통해 유착관계를 형성하면서 한국사회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치고, 그렇게 형성된 적폐가 온존하는 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회복될 수 없다”고 한 뒤 “선출되지 않은 언론권력의 개혁 또한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이번 특집의 마지막은 이종보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의 ‘삼성독재로 나타난 한국 민주주의체제의 한계’다. 그는 선출되지 않은 ‘삼성’권력이 형성된 과정과 함께 삼성독재 권력을 해체하지 못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했다. 더불어, 한국 민주주의 체제를 재구성하기 위한 과제도 제시했다.

그는 “삼성이 지난 80년간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권력의 유연성에 있다. 이번 이재용 사건 항소심 재판은 촛불항쟁으로 세운 정부 아래에서도 불사조처럼 다시 살아나는 삼성의 능력을 보여줬다”고 했다.

“적폐 청산의 주체는 결국 시민의 자각과 행동”

이희환 ‘황해문화’ 편집위원은 이번 호 권두언 ‘선출되지 않은 권력들, 적폐의 거대한 뿌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재벌과 법원, 종교와 언론권력 이외에도 여럿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을 터다. 개신교 종교권력 못지않게 천주교의 위계적 종교권력도 여러 곳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고, 언론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지역사회의 토호세력들도 엄존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폐의 온상인 선출되지 않은 이 권력들을 어떻게 하면 축출하고 청산할 수 있을 것인가? ‘선출되는 지방권력’을 다시 뽑는 6.13지방선거가 그나마 적폐를 청산하는 데 기여하는 선거가 될 수 있을까, 기대도 해본다. 그러나 거대 양당구조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정당정치 또한 정치권력을 둘러싼 불공정이 만연한 것을 목도하노라면, 답답한 마을을 금할 수 없다. 결국 선출되지 않은 숨은 권력의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만들어낼 주체는 시민의 자각과 촛불을 들었던 국민의 적극적 행동 속에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미투가 나아갈 방향’ 등, 다수 비평도 ‘눈길’

특집 이외에도 이번 호에서 주목해 읽어볼 비평이 많다. 김보명 선생의 글은 세계사적 동시성 속에서 전개된 한국의 미투(Metoo)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한다. 그는 “피해의 발화를 넘어 그려내야 할 세상을 향한 질문을 이제 본격적으로 던져야한다”고 제안했다.

중국학 전문가인 안치영 선생의 글은 한국사회에 깊이 영향을 줄 중국 정치제체의 변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향후 직면할 문제를 진단했다. 일본군‘위안부’연구회 회장을 맡아온 김창록 교수의 글은 한ㆍ일 간 첨예한 현안이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한일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양조훈 4ㆍ3평화재단 이사장의 ‘제주4ㆍ3, 온 겨레의 당당한 역사로’는 올해 70주년을 맞은 제주4ㆍ3의 역사적 진실을 간곡하게 들려준다. 제주4ㆍ3이 제주만의 문제가 아닐뿐더러, 완결된 과제가 아닌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 통일로 가는 역사적 상징으로 살아 있는 문제라는 점을 역설했다.

한편, ‘황해문화’ 다음 호는 통권 100호다. 이를 기념해 한반도의 미래를 내다보는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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