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한 10년 전쯤에 부평구 청천동 장수산을 올라가는 등산로 길섶에서 목이 잘린 문인석이 텃밭 한 귀퉁이에 서 있는 것을 우연히 보았다. 풀과 잡목들이 허리 높이까지 자라서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지만, 틈새로 간간이 보이는 봉분들은 이곳이 어떤 집안의 선산이거나 아니면 공동묘지였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길을 걷다가 문득 생각나서 찾아보았더니 풀과 잡목들은 그때보다 더 어지럽게 자라 있고, 문인석은 가슴에 푸른 이끼가 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침 그 무렵은 청천동 일대가 뉴스테이 사업으로 한창 철거와 이주가 진행 중이던 때여서, 마을 곳곳에 버리고 간 가재도구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었다. ‘아! 다행히 문인석은 남아 있구나’ 하고 생각한 것도 잠시, 마을 주민들의 흔적이 무참히 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한 일주일 전쯤에는 도두머리를 찾아갔다. 옛날 옛적에 서울과 부평으로 들어오는 길의 첫머리에 있던 마을이어서 그렇게 불렀다는데, 막상 서부간선수로를 따라 마을 입구에 가 보니 마을은 통째로 사라지고 높은 벽만 서 있다. 이미 재개발 공사가 시작돼서 벽 틈으로 바라본 도두머리는 붉은 흙만 가득했다. 길을 계속 따라가면 만나는 마가묘는 마을 형태가 그나마 남아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대장동은 그래도 오래된 다리가 운치를 더하는데, 부평으로 들어오던 첫 마을이 길과 함께 사라진 셈이다. 그동안 마을에 한번 들어가 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는 부평시장에 나가 보았다. 진척 상황을 정확히 아는 건 아니지만, 시장 상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올해 안에 순대골목과 생닭거리 상가들이 모두 자리를 뜬다고 한다. 순대국에 순대를 넣지 않는다며 면박을 받곤 했던 순대골목은, 그곳의 독특한 냄새에 익숙하지 않으면 감히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다. 1년에 한두 번 닭을 사 먹을 수 있던 시절 찾아갔던 생닭거리는 닭을 통째로 올려놓고 팔거나 튀겨서 내놓던 곳이다. 동네 치킨집이 그렇게 많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사라지지 않고 잘 버텨왔다. 내년쯤에는 아마도 40여 년 가까이 이어오던 이 상가들도 다시 못 보게 될 모양이다.

사라지는 것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없애지 않고 남기기만 하는 것도 최선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는 걸 후대에 보여줄 필요는 있다. 다만, 어떻게 잘 모아 놓고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이 어려운데, 청천동 길거리에 흩어져 있던 일상 물품들은 보존할 곳이 없어서 포기해야만 했고, 순대골목은 아직 여지가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그곳에서 갈무리한 물품들을 어디에 놓아둘 수 있는지,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건 여전히 어렵다. 지역 박물관도 공간의 한계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길섶의 문인석처럼 본래 있던 공간의 일부를 점유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일 텐데, 그것이 요즘은 마을박물관이니 에코박물관이니, 길거리박물관이니 하면서 시도되고 있는 형편이다. 요컨대, 기존 틀에 묶인 보존 대책만으로는 앞으로 계속 발생하게 될 유물의 처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역의 유적과 유물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 시스템을 벗어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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