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가족사 다룬 연극 ‘나비’ 인천에서 만난다

“열세 살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9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어! 지금도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구. 그 기억을 어떻게 잊어!”
“잊으세요! 그리고 용서하세요. 조국도 관심 없는 과거를 당신들이 들춰내 뭐하겠다는 거요? 당신이 받은 고통을 나와 내 손녀에게 퍼붓지 말아요!”
5월 25일 인천에서 막을 올릴 연극 ‘나비’(김정미 작·방은미 연출)에 등장하는 세 할머니는 모두 ‘위안부’ 출신이면서도 과거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갖고 산다.
딸 내외를 따라 뉴욕에 이민온 지 10년이 된 김윤이 할머니는 위안부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꼭꼭 숨긴 채 외롭게 살아간다. 심지어 가족에게조차 비밀로 덮어두고 결혼해 자식까지 낳았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한국에서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역시 위안부 출신이면서 증언을 통해 일본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뉴욕을 방문한 박순자, 이복희 할머니다.
창문도 열지 않고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던 김 할머니는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손녀 지나의 간곡한 부탁으로 마지못해 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원치 않았던 만남은 결국 갈등으로 이어진다.
과거를 통탄하며 일본을 원망하는 박, 이 할머니에게 김 할머니는 “내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치고 박, 이 할머니는 그런 김 할머니를 “좋은 교육받고 자라 과거에 관심 없는 이기주의자”라고 비난한다.
연극 ‘나비’는 199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일본인 밀집 지역인 리틀 도쿄, 지난해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져 화제가 됐던 작품. 2005년 서울연극제 개막작으로 한국 관객에게 첫선을 보였고 인천여성회, 반미여성회 인천본부,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여성위원회 등이 초청해 25일 인천에서도 관객을 만나게 됐다.
이 연극을 쓴 재미 한국인 작가 김정미씨는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집을 토대로 이 작품을 썼으며 직접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얘기를 듣기도 했다. 김정미씨는 99년 4월 로스앤젤레스에서 ‘HANAKO(하나코)’란 제목으로 공연을 올렸으나 다시 미국 주류사회에 일본의 전쟁범죄를 알린다는 의도로 ‘Comfort Women(위안부)’이라고 제목을 바꾸기도 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평생을 산 그들이 오늘날 겪고 있는 현실적인 갈등과 아픔을 보여줌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과거사가 아닌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들의 문제라는 공감대를 높여주는 수준 높은 작품이라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지난달부터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사죄·배상을 촉구하는 시민서명운동을 인천 전역에서 펼치고 있으며 연극 ‘나비’의 인천공연을 주최한 인천여성회 관계자는 “올해만 해도 ‘위안부’ 할머니가 10분이나 돌아가셨다”며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대로 된 역사적인 평가와 일본의 사죄·배상을 받아내려면 무엇보다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연극무대를 통해 과거의 역사이자 현재까지 이어지는 ‘위안부’ 할머니의 고통을 공감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25일 오후 6시 인천대학교 인문관 4층 합동강의실에서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며 현장에서 5천원권 티켓을 구입하면 입장할 수 있다.

문의·435-3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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