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단속ㆍ추방 중단’ 촉구 시위 이어져


어느새 이 땅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것도 익숙해져

“한국이 허락한 날보다 3년 6개월을 더 이곳에 살고 있다. 연수생으로 일하던 곳에서 짐을 꾸려 새벽에 나오던 날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그때 뿐, 이 땅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것도 어느새 몸에 익숙해져 갔다” 한 이주노동자의 고백이다.

16~17세기 아프리카 노예상인들에 의해 카리브해의 사탕수수농장, 북미의 목화농장 등으로 끌려갔던 흑인 노예노동자들이 대규모 이동을 시작한 이래 노동자의 국제적 이동은 본격화됐다.

우리나라도 산업부흥기시대 독일과 미국ㆍ유럽ㆍ남미 등으로 광부ㆍ간호사ㆍ청소부ㆍ일용노동자로 해외에 나가 갖은 박해와 수모를 견뎌야했으며, 현재 700만명 이상이 현지 교민으로 정착했다.

다문화 다인종 국가의 글로벌리즘이 확산되어가는 시대에 발맞춰 이제 한국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유독 한국 정부와 기업은 불법체류자의 신분을 악용해 이들에게 억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인권침해와 임금체불 등 또 다른 가해자 입장으로 이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한 이주노동자(남ㆍ33)를 만났다.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연수생이라고 했다. 그는 “6년 전 고액의 입국비용을 들여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최저임금 미지급, 임금체불, 사업장 내 폭행 등 산업연수생 하면 떠오르는 레퍼토리를 겪으며 미등록체류자가 됐다”며 “쉬는 날이면 방에서 나가지 않고 숨죽이며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았지만 한국 정부는 합당한 대책이나 제도적 보완책 없이 우리를 그대로 방치한 채 놔뒀다”고 회한의 심정을 전했다.

또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온 이주노동자(여ㆍ35)는 “식당종업원으로 성실히 일하다 똑같은 신분의 이주노동자와 사랑하면서 아이까지 생겼다. 하지만 남자가 비자기간이 끝나고 불법체류신분으로 단속반에 잡혀 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소에 감금되었고, 8년을 함께 했는데 면회 한 번 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대로 떠나보내야만 했다”고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한국정부, ‘보여주기’식 행사와 실속 없는 공언만 남발

이를 반영하듯, 지난 수년간 시민단체와 함께한 이주노동자 인권보호캠페인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 결성돼 각종 집회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정착기간이 길어지자 이주노동자들의 연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주민, 이주노동자, 다문화 사회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면서 정부는 점진적으로 노동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이들에게 불법체류자의 신분만은 해소하고자 노력해오고 있지만, ‘보여주기’식 행사와 실속 없는 공언만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노동부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적용받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일부 내용을 개정한다고 밝혔고 정기국회에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주노동자연대 측은 사업주의 고용편의만을 고려한 개악이라고 노동환경의 후퇴를 우려하며 지속적인 캠페인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등록체류자 배제 않겠다던 대통령 공약 지켜야

이주노동자연대 측은 사업장 이동의 자유, 장기취업의 허용, 단속절차와 영장 없는 무단구금과 방출 중단, 문화교류프로그램 개발, 이주여성 종합지원 프로그램과 통ㆍ통역 서비스 개발, 행정단위별 이주여성위원회 운영,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위한 케어전문가 양성 등 정부가 긍정적으로 제시했던 모든 사항에 대해 즉시 법적, 제도적 방안이 마련돼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이주민 정책의 기본방향에 대해 이주민을 일방적으로 동화시키는 것이 아닌, 다문화를 포용하고 상호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바람직하며, 사회적 지원의 대상에서 미등록체류자를 배제함은 옳지 않으며 다문화 포용과 기본적 인권보장에 있어 배제되는 이주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찬바람이 매섭게 부는 11월 12일 정오,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는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박정풍(남ㆍ32) 조직국장이 릴레이 1인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박 국장은 “지난 20여년 동안 수백만명의 이주노동자들에 의해 중소기업에서 그나마 경제 활황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 산업재해, 폭행, 임금체불 등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8년 기준 100만명에 달하는 외국인노동자에게 국제법과 국제인권규약에 맞게 노동3권과 생존권, 교육권을 합법적으로 보장해 편협하고 왜곡된 이주노동자대책을 올바로 정립해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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