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정신장애 피해자에게 ‘항거불능’ 입증 요구

최근 급증하고 있는 정신지체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내리고 있어 장애여성단체들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법원이 장애여성 성폭력 범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이유는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항거불능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
지난 달 20일 부산고등법원 제2형사부는 동거인의 딸인 정신지체 장애여성(당시 14세)을 5년 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김아무개(52세)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피해자가 초등학생 정도의 지능이 있기 때문에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선고이유를 밝혔다.
성폭력특별법 제8조는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여자를 간음”한 경우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이러한 규정을 무시한 채 비장애인 남성 중심의 사고로 사건을 해석, 무죄 판결을 내리고 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은 성명을 통해 “재판부는 여성장애인 성폭력범죄에 대해 가해자 가중처벌과 피해여성장애인 보호를 위해 마련된 성폭력특별법 제8조 항거불능 조항을 적용함에 있어 계속해서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신체장애나 정신장애 자체가 성폭력 위기 상황에서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항거불능의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오히려 장애여성에게 ‘항거불능’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면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속속 가해자에게 무죄판결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장애 자체가 이미 항거불능 상태”이므로 아예 제8조의 ‘항거불능’ 조약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장애여성단체인 ‘장애여성공감’ 역시 성명을 통해 “정신지체 장애여성의 경우 약간의 위력이나 위계만으로도 성폭력을 가할 수 있으며 비장애인에 비해 저항이 힘들 수밖에 없는데, 재판부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장애인과 같은 엄격한 저항 유무를 따짐으로써 정신지체 장애여성 성폭력 가해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비판했다.
‘장애여성공감’은 이번 판결이 성폭력 범죄를 판단하는데 있어 피해자의 저항유무를 따지는 법원의 남성중심적인 태도와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더불어 “재판부는 법 해석에 있어 ‘장애’의 차이를 이해하는 폭넓은 해석을 해야 하며, 점차적으로 성폭력 범죄를 판단하는데 있어 피해자의 저항유무를 따지는 태도를 탈피하고 가해행위에 초점을 맞춘 처벌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 사건에서 피해여성 측을 지원해왔던 여성·장애인단체들은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했고, 민사소송도 함께 벌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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