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이웃] ‘주말마다 설거지 하는 남편들의 모임’ 문형식 회장

“여보, 설거지 좀 해줘요”

아내의 외침에 귀찮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편은 그래도 아내사랑을 잘 표현하는 남편이다. 못 들은 체 하거나 못마땅한 표정으로 꿈쩍도 않거나,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눈빛으로 흘겨보는 남편이라면 ‘주설남모’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 문형식 회장은 날마다 20장씩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주설남모>를 알린다.
‘주설남모’는 ‘주말마다 설거지를 하는 남편들의 모임’의 줄임말이자, 결혼한 지 28년을 넘긴  문형식(57·부평1동) 회장의 캠페인이기도 하다.

부평1동 동아아파트 2단지에서 아내와 장성한 아들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문씨는 1997년부터 주말마다 설거지를 신나게 한다. 요즘 젊은 부부야 부엌일을 허물없이 나눠하지만, 5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싱크대 앞에 서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1997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어느 신문의 짧은 글을 읽고 느낀바가 컸다오. 토니 블레어 총리가 노동당 당수시절에 내무장관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여덟 살이던 막내 딸 캐드린이 받아서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는 지금 설거지 중이니 나중에 전화하세요’였다는구료”

그 글에 감동받은 문 회장은 그날 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장모에게 편지를 썼다. 장모의 답장은, “문 서방이 아내를 위해 주말에 설거지를 하겠다고 하니 고맙기는 하지만 남들이 흉 볼 수도 있으니 아니 해도 괜찮겠다”였단다. 문 회장은 그 약속을 평생 지키기로 하고 혼자서 ‘주설남모’를 결성해 날마다 전철 안이나 등산길에서 ‘주설남모’ 홍보명함을 20장씩 나누어주고 있다.

“홍보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도 등산길에서는 말 붙이기가 좋아서 명함을 40장씩 들고 가는데 여성들은 좋은 일 한다고 박수치고 환호성치고 온갖 찬사는 다 해요. 물론 남성들은 뒤에서 ‘흥’ 하고 콧방귀도 뀌고 손가락질도 하고 그러지. 그래도 뭐, ‘주설남모’의 진짜 의미를 알면 저절로 찾아 올 거라 믿는다오”
요즘 젊은 남편들이 설거지와 요리 등 부엌일 분담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시댁에 가면 모조리 아내 몫으로 돌리는 경우에 대해 문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딸을 위해 설거지하는 사위는 기특하고, 며느리를 위해 설거지하는 아들은 미운 법이지. 굳이 미움을 사면서까지 성급하게 어머니의 마음을 바꾸려들지 말고 어느 정도 이해를 얻은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남편들의 마음속에 ‘아내사랑’이 살아 숨 쉬고 있느냐가 아니겠소?”

문 회장이 ‘주설남모’를 만든 것은 생활에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주설남모에 가입했다고 꼭 설거지를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아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어떤 행동으로든 실천하는 데 의의가 있어요. 저도 설거지 외에 아내 생일에 가족들의 이름을 담아 ‘감사장’을 준 적이 있어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가족들 뒷바라지를 한 아내가 참 고마워서 그런 생각을 했지. 아내가 눈물을 흘리는 걸 보니까 나도 마음이 ‘찡’했소. 아내를 사랑하면 저절로 가족 사랑도 적극적으로 하게 되니까 그런 마음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주설남모 회원 자격이 있다오”

▲ 주말마다 설거지 하는 남편들이 생각해야 할 다섯가지 덕목
문 회장은 2006년에는 인터넷에 ‘주설남모(http://cafe.daum.net/juseolnammo)’ 카페를 개설해 온라인 회원도 모집하고 있다. 현재 162명이 모였고, 아이러니하게도 50대 회원이 가장 많다.

“씨름선수 이만기씨를 닮은 잘생긴 회원이 있는데 키가 커서 싱크대가 낮으니까 허리가 아프다며 불평했어요. 그러면서도 아주 행복한 표정이었는데, 아마 화목한 가정을 만들고 있다는 뿌듯함 때문이었을 게요. 카페 개설 후 10년이 되는 2016년까지 10만명의 남편들에게 행주치마를 입히는 게 목표라오”

그럼, 문 회장은 ‘추석’인 이번 주말에도 설거지를 할까?

“물론이지요. 명절 설거지가 얼마나 많습니까. 제 어머니는 이제 주설남모 회장인 아들을 사람들에게 ‘참 훌륭하지요?’라고 자랑하십니다. 우리 집에서는 남자들이 설거지하는 건 흔한 풍경이에요. 올 추석에는 꼭 남편들이 설거지를 해보길 권합니다. 스스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말할 용기가 부족하다면, 가족끼리 놀이를 통해서 지는 사람이 설거지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설거지와 아내사랑, 화목한 가정을 강조하는 문 회장은 “부부란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않으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인 비익조(比翼鳥)와 같습니다. 부부가 행복을 누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서로 배려하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얼마든지 화목해질 수 있을 것이요”라고 말한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추석. 추석의 흥겨움보다 명절 내내 끊임없이 차려낼 명절 음식과 설거지 생각에 한숨부터 내쉴 아내들에게 감동을 줄 방법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아내들의 명절 증후군도 사라질지 모르겠다.

※이경애 시민기자는 청천동 대우푸르지오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부로서, 자전거타기를 좋아합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