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십년 동안 몸담았던 우리 집을 떠나 새로이 터전을 꾸렸다. 사실 법적으로는 우리 집이 아니었지만, 그곳은 힘들고 지친 우리를 한 결 같이 받아주고 감싸주던 분명 우리의 보금자리였다. 그곳의 방 한쪽에서 태어난 두 아이들이 처음 맞이한 세상이 바로 그 집이었다. 담장에는 우리 아이들이 그린 달님과 해님이 웃고 있고, 화단에는 남편이 심은 상추, 호박, 고추, 수세미, 가지 등의 푸성귀들과 이름 모를 꽃들이 자라고 있는 그 집은 우리가 십년 살아온 세월과 흔적 그 자체였다.

그런데 아직도 멀쩡한 그 집이 허물어지고 한낱 쓰레기더미로 사라져버렸다. 처음 주인아저씨의 통보를 받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디로 가야할까 그 걱정보다 정든 우리 집이 사라진다는 것 자체가 가슴 아팠다. 서둘러서 짐을 꾸려 나오고 차마 집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리고 고마웠다고.

우리가 살던 동네가 재개발 구역으로 확정되면서 여기저기서 지분 쪼개기를 위한 ‘집 허물고 그 위에 빌라 세우기’가 한창이다. 물론 우리 집도 그 희생양 중 하나다. 하여 동네가 어수선하다보니 이제는 초등학교 앞에 ‘쪼개기를 하지 맙시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다한다. 몇 년 후면 그 빌라들도 사라지고 그 위에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설 것이다. 인천시의 도시 개발계획을 보면 인천 전 지역을 재개발 대상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말이 좋아 재개발이지 그것이 성냥갑처럼 똑같이 생긴 아파트 단지 조성을 의미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 나라 사전에는 재개발이 아파트와 동의어이기라도 한 걸까?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재개발일까? 개발이란 무엇이고 재개발이란 무엇인지, 제발 그 단어의 기본적 의미라도 한번 새겨본 뒤 무얼 해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대한민국은 지금 재개발 열풍 앞에 너도나도 혈안이 되어있다. 눈앞의 이득 앞에 정치인들은 뉴타운 조성을 공약하고, 기업인들은 얼싸 좋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그리고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돈 불릴 생각에 앞 뒤 가릴 것이 없다. 몇 년 후 이 도시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아파트들 외에 무엇이 더 있을까? 우리 아이들에게 이제 집은 없다. 그저 아파트가 있을 뿐이다.

저녁 무렵 집집마다 풍겨오는 구수한 냄새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 골목길에서 뛰노는 아이들은 이제 과거를 회상하는 영화의 한 장면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될 것이다. 추억이고 역사고 다 필요 없다. 오직 평당 얼마, 수치로 환원되는 그 천박한 자본의 논리 앞에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나로서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지만, 편리하고 합리적인 주거공간으로서 아파트에 대한 선호 또한 이해한다. 그래서 정부가 재개발을 통해 최첨단 주거시설인 아파트에서 온 국민이 살 수 있도록 시혜라도 베푸는 것일까? 정령 그렇다면 차라리 좋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재개발이 되면서 그곳에 수 십 년 동안 살아온 대부분의 주거민들은 쫓겨나 값싼 주거지를 찾아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건축업자들이 돈 안 되는 서민주택은 짓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재개발로 선정된 동네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덩달아 전세 값마저 올라 집 없는 세입자들은 살 집 찾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살 곳을 찾아 도시의 외곽으로 사라져주어야 한다. 그렇다. 아마도 정부가 원하는 것은 재개발 사업을 통해 계층 간 주거분리로 도시를 깔끔하게 재정비하는 것인 모양이다.

우리의 새로운 터전 또한 2~3년 안에 재개발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마당대신 옥상이 있는 이 집으로 이사하기가 무섭게 남편은 전에 살 던 집에 심었던 것들은 옮겨왔다. 그리고 그것들을 살릴 수 있어서 안도해하는 것 같았다. 또 언제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어디로 가든 이것들도 같이 가지고 갈 것이고, 그 마당의 흙을, 그 기억을, 끝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줄 것이다.
▲ 황보화
번역가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