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평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30년 부평지킴이’라는 기사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목수에서 노점상 할머니, 소아과 의사까지, 지면에 등장하는 부평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지나간 부평의 한 시절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펼쳐지는 착각에 빠져든다.

역사라는 것이 시간과 공간 위에 뿌려진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일이라면 이 땅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기억만큼 부평의 역사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사료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기록된 것보다 기록되지 못한 일들이 훨씬 많은 부평이라는 자그마한 공간에서 이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잃어버린 시간뿐만 아니라 기록된 역사가 전해주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최근 들어 역사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기억된 역사’에 대한 고민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

부평구에서도 역사와 기록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부평역사박물관이 세워져 공공의 차원에서 기록물이 수집되기도 하고 학자나 민간차원에서의 접근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람에 대한 관심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학문적인 이유일 수도 있고 정치적인 문제 혹은 지역 내의 다층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언급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사람들의 기억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아직 공공기관에서조차 기록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기억의 수집은 무엇보다 시급히 시작해야 할 작업 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무엇을 수집할 수 있을까.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흔히 ‘민중’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삶이다. ‘30년 부평지킴이’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개 여기에 해당한다. 단순히 연대기를 정리해내는 일이 아니라면 이들의 삶은 그들에게 깊숙이 다가서지 않는 한 쉽게 알아낼 수 없다. 때문에 반복적인 만남을 통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희미한 기억들을 함께 공유하고 정리해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개인사 자료들, 예를 들면 사진이나 문서와 같은 자료들의 중요성을 알리고 설득해 수집해둘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론 사소한 자료일지 몰라도 집단의 기억으로 묶여질 때 작은 성적표 하나도 중요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다른 한편으론 부평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해 온 사람들의 삶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적인 영역에 있거나 부평이라는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평가되는 인물들의 삶과 그들이 갖고 있는 ‘힘’의 기원이다. 이것은 부평이 걸어온 현대사의 궤적을 밝혀볼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부평이 걸어가야 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 중의 하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얽혀있는 관계들이 많을 수 있으니 관찰자의 보다 냉정한 시각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차원이 약간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지역 인물에 대한 역사적 정리 작업이다. 얼마 전 문제가 된 ‘친일인명사전’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물에 대한 평가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때문에 여기에는 지역 내의 합의가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시대의 하한점은 어디로 둘 것인지, 선정기준을 출생에 둘 것인지 아니면 활동 내용에 둘 것인지, 생존 인물을 포함할 것인지 아니면 사망자만 포함할 것인지 등에 관한 합의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부평이라는 지역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다. 부평사람들은 부평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아직 부평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 볼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가슴속에만 담겨 있는 기억은 역사가 될 수 없다. 이들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마당을 열어주자.

▲ 김현석
인하대 강사
전 (부평사) 편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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