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세 아이를 데리고 처음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다른 가족들과 함께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도시락에 돗자리까지 준비하고 나선 모처럼의 나들이었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우리들의 목적지는 서른한 번째 촛불집회가 열리는 서울광장이었습니다.
1987년 이후 가장 많은 시민이 몰렸다는 역사의 현장, 그 뜨거운 촛불의 물결 한 가운데 우리의 아이들과 이웃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습니다.

남녀노소, 너 나 할 것 없이 온 국민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당신의 ‘무대뽀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 덕분에 우리들은 열린 광장에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며 신나게 한 판 놀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잠시 공부에서 벗어나 나라 걱정하느라 애를 쓰고 있습니다.
6·10 항쟁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듯, 지금의 경험이 앞으로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거라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께서 배후를 물으셨지요.
우리의 배후는 인터넷을 통해 바로바로 공유할 수 있는 진실 그 뿐이었습니다.
눈과 귀만 막지 않는다면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진실, 애써 당신만 외면하는 진실, 그것이 우리의 배후였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어두워진 세상을 다시 환하게 밝히기 위해 우리 모두 촛불을 들었습니다.

세상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냐고 묻고 있는 당신만이 그 변화를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국민의 뜻을 섬기겠다던 그 다짐이 귓가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국민의 뜻을 무력으로 진압한 당신. 그 때 우리는 당신의 본질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라도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결국 민주주의는 우리 힘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감과 자부심을 심어준 이는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당신 덕분에 우리 모두 광우병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한 100일 동안 참 화나는 일도 많았지만, 유머와 위트, 웃음의 미학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경찰차에 불법주차 딱지를 붙이고, 확성기를 든 경찰에게 ‘노래해! 개인기!’를 외칠 수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해학과 여유가 빛을 발했습니다.

당신, 고맙습니다.
당신이 준 위기가 우리에게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그 무엇도 부드럽게 휘지 못하고 강하기만 하면 부러지기 마련이라는 점, 부디 기억하십시오.
풀이 바람 부는 대로 눕듯이 당신도 국민의 뜻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당신에게 준, 위기를 기회삼아 일어서는 길입니다.
당신이 걱정입니다.
▲ 황보화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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