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다른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다.

5월 한 달 동안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 등을 주제로 칼럼을 세 번이나 섰으니, 다른 주제로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독립적이기는 하지만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개혁신문으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일정 부분 재정적 도움을 받는 <부평신문>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칼럼을 계속 써도 되는지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마음을 바꿨다. 전경의 군홧발에 짓밟히는 여학생의 동영상을 보고 또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눈물이 났다. 20년 가까이 시민운동을 했지만, 이렇게까지 분노로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별로 없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넘어진 여학생을 군홧발로 짓밟고, 마치 축구공을 다루듯 군화 앞부분으로 머리를 걷어찰 수 있을까? 그것도 일말의 죄책감조차 없이 당당한 얼굴로. 억장이 무너졌다.

20년 시민운동을 통해 그래도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조금이나마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전경의 군홧발에 짓밟혔다. 무너졌다. 수십 년 동안 우리 국민이 피를 흘리며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는 무너졌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만에 무너졌다.

2008년 5월 31일 서울시청 앞 광장은 한판 신명나는 축제였다. 10만의 참가자를 위한 무대는 중요하지 않았다. 구호도 중요하지 않았다. 10만의 참가자들은 참여의 축제를 만들고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서울의 중심도로를 걷는 행진도 축제였다. 참가자들은 무정형의 정형 같은 축제를 만들며 평화롭게 걸었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부부의 모습은 유모차에 잠들어 있는 아기만큼 평화로웠다. 초등생 자식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단위의 참가자들은 어린이들만큼이나 순수하고 발랄했다.

중고생을 데리고 참석한 386세대 부모들은 축제방식의 시위를 낯설어하면서도, 광우병 쇠고기를 걱정하는 중고생들의 고민만큼이나 진지했다. 그러나 그들도 금방 2008년이 만든 축제식의 촛불집회를 즐기기 시작했다. 손자, 손녀의 손을 잡고 참가한 노부부는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나라를 걱정했고, 광우병 쇠고기에 노출될 손자, 손녀를 걱정했다.

2008년 6월 1일 새벽 서울의 거리는 우리식 민주주의의 실험장이었고, 직접민주주의를 확인하는 평화적인 축제였다. 그 평화적인 민주주의 축제를 이명박 정권은 군화발로 짓밟았으며, 걷어찼다.

민주주의의 위기다. 어느 디지털전사가 말했듯이 이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우려에서 시작된 촛불문화제는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민주주의를 군홧발로 짓밟는 이명박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축제로 바뀌고 있다. 지금 우리 민주주의는 위기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이다. 디지털과 광장의 축제를 통해서! 이것이 칼럼을 또 쓴 이유고, 계속 써야하는 이유다.
▲ 박길상
*박길상씨는 평화와참여로가는 인천연대 사무처장을 지냈으며, 현재 인천연대 감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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