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차단된 복도를 걷다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누구를 위한 시간인가?

사십 명 줄 맞춰 칠판을 향해 앉은 일사불란 학생 자세와, 팔십 개의 눈총을 맞으며 오십 분 수업 분량을 채워나가는 선생님. 교실의 이런 배치도가 쌍방향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학생과 교사가 있는 교실 밖에서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영어시간엔 영어문법이, 수학시간엔 수학공식이 빼곡히 판서된 칠판을 보면서 사십 명의 개성들은 일률적으로 지식을 습득한다. 과연 효율적일까?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수업을 증거삼아 일단 유효하다고 치자. 그런데 바른 자세로, 될수록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하루 6, 7시간씩 수업을 받아보라.

전쟁 같은 점심시간을 치르고 다시 교실에 꼼짝 않고 앉아 5교시를 맞아보라. 눈은 감기지만 수업은 정해진 진도와 정해진 방식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 사정이야 어떻든 끄떡없이 진행되고 만다. 긴밀한 교감 없이 긴긴 시간을 견디기란 누구라도 쉽지 않다.

이게 바람직한 수업인가? 그러면 바로 돌아오는 대답이 있다. 우리도 다 겪었다. 더 큰 꿈을 키우기 위해 인고의 시간은 필요하다. 사람은 시련을 겪어야 큰 인물이 된다. 큰사람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물론 대학입시다.

그럼 우리는 단순히 큰사람이 되기 위해 이 시간을 겪어야 하는가.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그 시절의 지식을 써먹었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이 시간은 단순히 겪기 위한 시간이란 걸 증명해 주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러자 다른 의문 하나가 다시 치솟았다. 교사가 학생을 위해 존재할까, 학생이 교사를 위해 존재할까. 참으로 이런 우문이 없을 텐데 그 순간 그런 질문이 떠올랐다. 학생은 신세대, X세대, Y세대, 88만원 세대, 2.0세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데 어떻게 수업방식은 오로지 한 가지만이 주류를 이룰까. 혹시 맞지 않는 옷을 입으라고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공부할 마음이 있으면 인터넷 강의 등록하고 유명 강사를 통해 얼마든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시대다. 학교 수업은 그런 데서는 절대 해줄 수 없는 지점을 찾아서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단순 지식 암기가 아니라 과정을 참여해야 얻을 수 있는 그런 능력 말이다. 무언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지만 그것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대세다. 왜 모두가 필요성을 느끼는데 불가능할까. 그것 참 의문이다.

이 정부 들어서 모든 분야에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대원칙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십 년 정부 이전으로 돌아가기. 교육 분야도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갔으며 후폭풍은 더 크게 예견되고 있다.

등급제 폐지하고 백분위로 돌아가기, 0교시와 야자 부활, 초중고 전 학생에게 툭하면 시험을 치르게 해서 전국의 학생을 한 줄로 세우기, 자립형 사립고를 더 많이 설립하고 유명 학원 강사 학교로 초대하기, 외에도 더 많은 기막힌 정책들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정책의 정체를 한 줄로 드러내면 성적 되는 소수만 키워주겠다, 형편 되는 소수만 교육 혜택 받아라, 다. 두두두두, 기대할 것도 없는 개봉박두다.

단답형 문제풀이를 요구하는 잦은 시험은 주입식 암기식 지식 습득으로 학생들을 몰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내세우는 선진화에는 결코 걸맞지 않은 퇴행이다. 그러니 이 정부의 저의가 무엇일까 다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너희는 우리가 만든 제도 아래서 주는 것 고스란히 받고 국으로 얌전한 국민이 돼라. 의료보험, 전기, 수도 민영화하고 인터넷 종량제 하고 비즈니스 프렌들리하고, 언론은 정부에 프렌들리하고, 반대하는 사람 공안정국 조성해 겁주면 되고.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국민은 왜 일하는지도 모르게 월화수목금금금 일하고, 한 시간 일찍 출근해 일하고 퇴근 시간이 지나도 남아서 일하고.

학생은 어른들 일하듯 공부하면 되니 생각할 틈 없이 외워라. 전 국민이 얼리버드가 돼서 자신을 돌아보며 왜? 질문할 새 없게 만드는 것. 사고는 국가가 할 테니 국민은 따라만 오라? 이 끔찍한 상상은 기우이길 바란다.

요즘 상종가를 치는 댓글 하나가 온 국민을 분노 속에서도 박장대소하게 했다.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2MB는 초중고와 싸운다. 그 중고생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대통령과 맞장 떴다.

혼란과 위기에서 촛불을 밝히는 발랄하지만 줏대 있는 영혼들은 낡고 맞지 않는 옷을 입고서 세상사를 꿰고 있었다.
▲ 김경은
소설가
계간문예지 <미네르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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