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 채식문화와 우리의 식탁 ⑤

│연재순서│

 1.  채식주의와 녹색생활
 2.  영양에 대한 오해와 음식궁합
 3.  채식의 단계와 식단 작성법
 4.  환경과 알러지를 이기는 채식식이요법
 5.  조상들의 채식주의 생활
 6.  떡과 한과를 이용한 건강법
 7.  콩고기와 밀까스, 젓갈이 들어가지 않은 김치 
 8.  전통음료와 채식보양식으로 시원한 여름나기
 9.  채식으로 살을 빼는 채식 다이어트
 10. 채식은 사랑입니다

사계절이 뚜렷해 식생의 분포가 다양한 한반도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은 대자연의 변화에 따라 구분된 24절기에 따른 각각의 음식과 풍습을 지니고 있다.

농경사회 기반 속에서 성장한 전통문화는 기온의 변화·바람의 영향·강수량 등을 고려해 농사시기를 결정했으며, 자연의 변화는 곧 자연의 일부인 우리 몸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전통음식과 세시풍속을 살펴보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생태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그 지혜로움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특히, 계절마다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먹을거리들을 잘 관찰하고 이용해 건강을 살피는 식문화도 매우 발달했다. 문명이 발달하지 않고 생활이 불편했던 시절에는 자연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자연 산물을 적시에 채취할 수 있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봄에 가장 먼저 피어나는 진달래꽃을 이용한 화전, 어린 쑥을 절구로 찧어 찹쌀가루에 섞어 만든 쑥떡, 지천에서 피어나는 민들레·씀바귀·돌미나리·질경이,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을 비집고 나오는 냉이 등의 봄나물은 1년 내내 먹을거리로 장만돼 다양한 음식에 활용됐다. 단오에는 쑥이나 취와 같은 녹색 나물을 떡가루에 섞어 수레바퀴모양의 둥근 떡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 먹었고, 흰떡을 썬 것에 밀가루를 묻혀 오미자 물이나 꿀에 띄워 먹는 수단(한국 고유의 화채)을 먹었다.

가을 보름달이 뜰 때는 멥쌀가루를 익반죽해 빚어 깨·팥·콩·녹두·밤 등의 소를 넣고 솔잎을 깔아 쪄서 먹는 송편을 먹었다. 노란 국화가 피면 잎을 찹쌀가루에 섞어 반죽하고 어린잎을 고명삼아 국화전을 부쳐 먹었다. 겨울 동지에는 나쁜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에서 붉은색의 팥죽을 나누어 먹고, 새해 첫날에는 떡국을 끓여 새해의 엄숙하고 청결함을 기원했다.

또 정월대보름에는 잣·날밤·호두·은행·땅콩 등을 깨물어 먹으며 1년 동안 무사태평하고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기원했고, 오색의 오곡밥을 지어 오장을 튼튼하게 했다. 또한 가을에 말려 두었던 아홉 가지 나물을 데치거나 무치거나 볶아 먹었으며 생강·계피·통후추를 넣어 끓인 수정과를 마셨다.

몸과 정신의 기운을 정화시키고, 음식으로 섭취 못하는 약성을 보충하기 위한 차문화도 발달했다. 이른 봄 새싹이 돋기 전에 피는 벚꽃차, 기운을 북돋고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인삼차, 봄에 부족해지기 쉬운 간의 기능을 보충해주고 허약체질을 개선해 주는 구기자차 등이 봄에 즐겨 마시던 음료다.

여름에는 밤과 대추를 달여 시원하게 만들어 신경안정과 식욕증진·불면증을 다스렸고, 변비를 예방하고 항암작용이 뛰어난 현미차를 마셨다. 가을에는 부족해지기 쉬운 폐기를 보충해주는 길경(약도라지)차를 마시고, 두통과 풍열을 다스리는 야생감국을 말려 차로 마셨다.

겨울에는 뜨거운 모과차로 기관지염과 감기를 예방·치료했고, 유자차를 마셔 냉증과 신경통·요통을 예방했다. 또한 귤껍질을 말려 오래된 담을 삭이고 변비와 식체를 다스리고 감기와 몸살을 치료했다.

우리의 전통음식은 영양도 풍요로웠는데, 주식인 쌀밥과 잡곡류를 응용해 죽과 미음 등으로 소화를 돕고 기력을 보충할 수 있도록 기본식단이 구성됐다. 팥을 삶은 물로 밥을 지은 홍반, 오미자 우린 물로 죽을 끓인 오미응이, 잣을 넣은 잣죽, 검은깨를 넣은 흑임자죽, 기타 각종 나물과 된장·고추장을 넣고 참기름을 둘러 비빔밥을 먹는 것을 즐겨했다. 단백질 보충은 콩을 발효시켜 간장·된장·청국장과 두부를 만들어 1년 내내 섭취할 수 있었다. 발효식품은 소화를 돕고 장을 튼튼하게 하며 항암효과가 있어, 발효식품을 즐겨먹는 민족은 장수한다고 알려져 있다.

한겨울에는 충분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섭취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김치를 담가 1년 내내 부족한 영양을 보충했다. 참깨·들깨 농사를 지어 기름을 짜서 나물을 무쳐 먹거나 전을 부쳐서 식물성 지방을 자연스럽게 섭취할 수 있었다. 또한 잣·호두·밤 등의 견과류를 절기마다 먹고, 영양을 보충했다. 김이나 다시마 등은 부각이나 튀각 등의 형태로 오래 저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먹었다.

우리민족은 아시아권에서 소장의 길이가 가장 길다고 한다. 소장의 길이는 주로 섬유질음식을 많이 섭취하는 식문화권에서 길게 나타나는데, 이는 채식주의 문화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우리 음식문화는 오색과 오미·오향 등이 골고루 발달했으며, 오장에 골고루 작용해 몸의 건강은 물론, 기질과 성격마저도 다스릴 수 있었다.

우리 조상들의 채식주의 문화는 자연의 리듬을 따라 순응하며 살고, 자연에 대한 이해를 통해 터득된 지혜로운 생태적인 삶이었던 것이다.

▲ 이현주
ㆍ기린한약국 원장
ㆍ인천녹색연합 채식 소모임
ㆍ‘행복한 밥상’ 운영
ㆍ‘건강한 한방채식이야기’(blog.naver.com/girinherb) 운영
(문의 33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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