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진보세력이 위기라는 진단이 높다. 2007년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표가 ‘증거’로 꼽힌다. 그래서다. 대선 참패가 ‘종북주의’ 때문이라며 민주노동당과 다른 진보신당을 만든 정치인들이 나타났다.

새삼 그들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진보정당의 분열이 자칫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 빈민운동, 학생운동에 연쇄적으로 ‘핵분열’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는 된다. 그래서다. 분열의 원인을 면밀하게 짚어둘 필요는 있다.

당을 분열시키며 내세운 ‘종북주의 색깔공세’는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어쩌면 목적했던 바를 다 이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앞으로도 갈등은 더 불거질 전망이다. 민주노동당을 깨고 나간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 당’이라며 날 선 비판을 하고 있어서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왜 엉뚱한 당에 투표할까?

과연 그러한가? 한나라당의 영남 득표율이나 민주당의 호남 득표율과 비교해볼 때, 민주노동당의 민주노총 조합원 득표율은 떨어진다. 그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는 ‘민주노동당 = 민주노총당’에 있지 않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당’조차 되지 못하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왜 그럴까. 왜 진보정당은 민주노총의 조합원들 가슴까지 사로잡지 못하는 걸까. 아니, 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진보정당 키우기에 온 열정을 쏟아 붓지 않는 걸까. 왜 엉뚱한 당에 투표하는 걸까.

그 해답을 사사로운 경험으로 찾고 싶다. 1995년 민주노총 건설을 앞두고 각 산별노조 정책실장 회의에 참석하며 민주노총과 인연을 맺었지만, 지금까지 줄곧 지녀온 의문이 있다. 민주노동운동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노동해방’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떤 ‘해방’인가. 더러는 지금 당장 이 땅에 사회주의 체제를 실현할 수 있다는 듯이 주장한다. 그런 분을 볼 때마다 부럽다. 또 다른 한편에선 마치 지금 당장 이 땅에 자급자족 체제를 구현할 수 있다는 듯이 주장한다. 그런 분을 볼 때도 부럽다.
과연 그게 가능한가. 도대체 그들은 20세기 인류의 쓴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운 걸까?

민주노동운동,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민주노동운동이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설득력 있게 답하지 않는 한, 감히 장담하거니와 조합원들의 가슴도 사로잡을 수 없다. 자본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천만번 주장한다고 자본주의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소련-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의 실패 뒤에도 아무런 성찰 없이 사회주의를 되뇌며 ‘양심선언’한다고 해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선언’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실제로 극복할 방안이 무엇인가의 문제를 파고들어야 옳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실현 가능한 새로운 사회를 이야기해 나가야 옳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가야 옳다. 과거처럼 단순히 반대운동만으로는 민중의 마음에 다가갈 수 없다. 민주노동운동이 국민 대다수의 눈높이에 맞춰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고 운동을 벌여나간다면, 비단 ‘민주노총당’만이 아니다. 모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당, 농민과 빈민의 당으로 퍼져갈 수 있다.

민주노동운동이 어떤 사회를 꿈꾸고 있는지, 신자유주의와 분단체제를 벗어난 그 사회에 대해 학습이 절실한 오늘이다. 모호한 대안은 언제나 선명한 분열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민주노총 차원의 대대적인 교육-선전 활동을 기대한다.

▲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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