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9일 정부의 업무보고에서 법무부는 시위진압 경찰의 ‘과감한’ 면책특권 보장과 불법파업에 대한 형사배상 명령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의 시위, 파업 등을 ‘떼’를 쓰는 것으로 규정한 것과, 우리말을 한 단계 하향화시키는 ‘떼법’ 논란에국가의 무력기구인 경찰이 화답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시위·집회에 있어서의 불법·폭력적 양상의 의사표현은 자제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폭력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특별한 생명체가 아니다. 국가권력과 의사표현의 자유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구조적 충돌 원인과 그 과정 속에 녹아 있는 폭력의 순차성에 대한 해석 없이, ‘폭력’ ‘불법’에 대한 한쪽편의 일방적 해석은 위험하다.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에서 양극화는 피할 수 없는 민초들의 운명이며, 그들을 보호해줄 법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그들은 필연적으로 집단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스스로의 파국적 운명에 대해 사회를 향해 호소하고, 법이 좀 더 자신들에게 관대하게 운용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달리 길이 없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때때로 흥분하고, 시위에 대응하는 공권력과 충돌함으로써 양자가 피를 흘리는 가슴 아픈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그런데 시위과정에서 폭력의 사용과 충돌이 과연 강압적 진압에 의해 본질적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가장 강압적 정권이었던 5·6공 시대야말로 도심이 최류탄에 잠겨있었고, 수많은 열사와 투사들이 자라난 토양이 아니었던가. 가시적 폭력은 내재된 모순이 탈출구를 잃었을 때 터져 나오는 민중들의 극한적 투쟁방식이다. 그럼에도 공안의 추억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권력의 ‘불관용’ 원칙이야말로 기실 ‘폭력’이라는 언어로 민초들의 집단행동을 과대포장하고, 그들을 ‘재갈 물리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농민들의 FTA반대 집회, 학생들의 등록금인하 운동,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적 요구를 단지 시위형태만으로 규정해 본질을 흐리는 것은 국가권력의 무책임과 결부된다. 민중들의 이러한 요구에 대한 입장과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정치이며,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현 정권은 처음부터 극단으로 몰리는 민초들의 시위·폭력만을 문제 삼지만, 이미 스스로의 권부에서는 도덕성과 법률 절차를 무시한 행태들이 부지기수로 드러나고 있다. 각종 투기, 표절, 이중국적 등의 의혹으로 이른바 ‘강부자’ 정권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국민들을 절망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이것이야말로 서민대중을 향한 권력의 사회적 폭력이라 비난받는 바다. 게다가 뒤에서 벌어지는 대운하 공사 진행방식은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정보독점의 폭력이 될 수 있다.

또한 포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재벌의 8억원의 손해배상소송, 10분간의 도로농성 노동자들에게 선고된 법원의 7800만원 벌금형, 지난해 7월 이랜드 노동자들에게 선고된 벌금 4억원 등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돈 폭탄’은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괴멸로 몰고 가는 혹독한 금권정치에 다름 아니다. 자유의지의 ‘폭력성’을 막는다는 미명하에 자유의지의 ‘표현 자체’를 막아버릴 가능성이 농후한 권력, 금력 그리고 국가 법률기구 등의 절묘한 결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80년 광주와 87년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주의의 단단한 역사의식이 잠재된 한국사회에서 이러한 강압은 한시성을 면할 수 없다. 민주화투쟁에 의해 권력의 운명이 바뀔 수 있음을 시민세력은 물론 공직사회도 경험했다. 권력이 폭력적 분위기를 조성해 자신들의 권력의지를 쉽게 관철하고자 유혹을 받겠지만, 권력기구 내에서도 총대 매기를 꺼려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애정이다. 우리국민은 국가의 폭력에 대해 단호하게 ‘불관용 원칙’을 지켜왔다. 새로운 권력자가 민중들에게 어떠한 자의적 평가를 내리든지, 역사와 정치의 주인은 국민이며, 권력이 우리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권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관용의 원칙’은 권력자가 국민을 대상으로 자의적으로 휘두르는 여의봉이 아니라, 국민이 권력의 본질을 결정하는 정치적 ‘판결문’으로 작동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불관용’이 부디 자신을 향한 민중들의 ‘불관용’과 격돌하지 않기를 바란다.
▲ 인태연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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