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상정초등학교 어린이회 선거’ 관찰기

2005년 새해의 시작. 까치설날이 한번 깨웠고, 우리우리설날이 또 한번 깨웠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한해의 출발이란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다. ‘우리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철수랑 같은 반 돼야 하는데…’ 설렘 반 걱정 반 시작된 3월도 반이나 흘러갔고 아이들은 저마다 ‘우리반’의 소속감을 느끼며 적응할 시기가 됐다.
이때를 즈음해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대표자를 뽑는 ‘어린이회 선거’가 한창이다. 지난 3월 11일 상정초등학교의 어린이회 선거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기호○번! 어린이 여러분의  한 표를 부탁드립니다!”

‘꽃샘’이라는 예쁜 이름과는 달리 그 기세가 대단한 꽃샘추위의 방문에 상정초등학교 아이들의 두 뺨은 ‘따끔따끔’ 발갛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얼마 남지 않은 후보자 홍보시간을 백분 활용하기 위해 선거 유세전을 벌이느라 여념이 없다.
“기호 1번!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호 2번! 발에 땀이 나도록 뛰겠습니다!”
상대에게 질세라 목청높이! 목청높이! 그 홍보열기에 추위는 저만치 물러선 지 오래다.
상정초등학교 어린이회 선거 후보자는 모두 다섯 명. 회장 후보로 나선 6학년 종현이와 예나, 그리고 부회장 후보인 5학년 준수, 현진이, 진대. 막상 선거일이 되니 많이 떨리는 모양이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공식적으로 자신을 유세할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마이크 앞에 서니 목도 잠기고 긴장도 되고 식은땀까지 난다. 하지만 자신을 확실히 홍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침 한번 꿀꺽 삼키고 연설에 들어간다.
“저를 회장으로 뽑아 주신다면 친구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겠습니다!”
“제가 부회장이 된다면 소리함을 만들어 학생 여러분들의 불편함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부회장으로 뽑힌다면 학교에 건의해 실내화 대신 신발로 학교 안에 들어올 수 있게 하겠습니다!”
아이들의 공약은 가지각색이다. 실내화주머니를 없애겠다는 대진이의 주장은 이렇다.
“학교에서 신발을 신고 다니면 실내화 비용도 아낄 수 있고, 실내화를 안 가져와서 우는 친구들도 줄어들 거에요. 눈, 비 오는 날엔 청소를 더 열심히 하면 돼요”
그런데 연설대에 오른 후보마다 빠뜨리지 않는 공약이 있으니, 다름 아닌 ‘폭력 없는, 왕따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요즘 이슈화되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를 아이들 역시 실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pm. 2:00 투표시작

오후2시. 투표가 시작됐다. 이날 유권자는 4학년부터 6학년 아이들 전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에 붉은 인주를 찍었을 아이들. 노랑종이 파란종이를 접어 투표함에 넣는 손길에 흥분과 기대가 가득하다.
기표소, 투표함 등 모든 것이 처음인 4학년 하얀누리는 “처음 투표해 본 기분을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하는 기자의 질문에 “꼭 곰인형을 받은 기분이에요! 너무 좋아요”라고 답하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누리는 반장선거를 제외하곤 투표가 처음이지만 후보자 공약을 비교해 보며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표가 너무 신나고 재미있다고.
누리와 같은 학년 현아도 투표를 마친 후 무척 상기된 얼굴로 “비밀투표는 기본이에요”라고 말하는데, 그 모습이 어른들 못지 않다.
6학년 단비는 평소 믿음직스럽게 생각했던 친구를 뽑았다고 한다. 그리고 “혹시 제가 뽑은 친구가 선출되지 않더라도 회장, 부회장이 된 친구가 더 잘해주길 바래요”라는 말을 잊지 않아 아이들의 선거의식이 키만큼이나 커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pm. 3:00
“최고로 좋은 상정초등학교 만들래요”

오후 3시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시작되자 후보들은 연설 때보다 더욱더 긴장한 모습이다. 투표함을 열자 노랗고 파란 투표용지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6학년 아이들로 구성된 선거관리위원들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한 장 한 장 투표용지를 확인한다.
확인결과, 회장에는 임종현 어린이가 부회장에는 김예나, 이진대 어린이가 각각 당선됐다.
회장으로 선출된 종현이는 “어른들처럼 서로 싸우고 돈으로 하는 선거는 나쁘다”며 깨끗한 선거를 치러 뿌듯하다는 소감을 말했다. 실내화 주머니를 없애겠다는 재미있는 공약을 내세운 부회장 진대도 “이제는 까불지 않고 의젓한 모습으로 우리 학교를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학교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신나는 축제, ‘어린이회 선거’에서 발견하는 희망

아이들에게 ‘어린이회 선거’는 하나의 축제와 같았다. 투표는 ‘설레는 것, 재미있고 신나는 것’이라며 “커서 어른이 되면 그때도 지금과 같이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할래요. 꼭 참여할 거에요”라고 말하는 상정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모습. 이에 비춰본 어른들의 모습이 공연히 부끄러워진다.
‘어린이회 선거’는 아이들이 바른 민주의식을 형성해 나가는 첫 걸음이다. 선거과정을 통해 이를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상정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모습에서 작지만 큰 희망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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