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 일제 지명 잔재 여전, 삼능ㆍ백마장ㆍ부평동초 등
러일전쟁 참가한 전함 삼립(三笠)에서 삼산 유래 가능성 제기

<출처: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우리 민족이 독립한지 60여년이 훌쩍 넘었지만, 우리 주위에는 일제 강점기 때의 잔재들이 여전하다. 민족정기를 세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에도 이런 일제 잔재들은 부평에도 남아 있다.

지명(땅 이름)은 당 시대 상황이나 권력자의 지배정책이  반영돼 제정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 동안 옛부터 불려온 우리 고유의 지명이 사라지고 일제에 의해 개명된 지명이 그 자리를 대신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기도 한다.

이에 본지는 89주년 3.1절을 앞두고 부평지역에 남아 있는 일본(일제 강점기 동안 제정된) 지명의 대표적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삼산동'이라는 지명의 유례 근거가 명확하지 않으며, 일본 지명에서 유래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주장이 부평 지역 연구원들로부터 제기되는 점에 대해서도 조명하고자 한다.


여전히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 백
마장ㆍ삼능

부평구 의회 이익성(46) 의원은 부평이 고향이다. 특히 현재 살고 있는 부평2동에서 태어난 토박이다. 이 의원은 술자리가 끝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할 때 운전사에게 '삼능'으로 가자고 가끔 말한다고 한다.
삼능이 일제의 잔재라는 것을 알지만, 대개 택시 기사들이 “부평2동 가주세요” 하면 잘 모르고, “삼능으로 가주세요” 하면 잘 알기 때문이다.

전남에서 올라와 서울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김아무개(30.여)씨는 부평에 올라온지 3년째다. 김씨가 자취하고 있는 집은 산곡4동. 김씨는 회식 후 택시에 올라 “부평 백마장 입구 00 아파트요”라고 목적지를 말한다. 김씨는 '백마장'이 어디서 유래됐는지 잘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백마장이란 지명을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삼능'과 '백마장' 등은 부평지역에 남아 있는 대표적 일제 잔재다.

부평사편찬위원회가 지난해 출간한 부평사 등에 따르면, 현재 부평2동 전체를 '홍중사택' 또는 일본말로 '히로니까사택'이라고 불러왔다. 이는 현 부평1동 동아아파트 남쪽 건너편 철로 변에 한국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가 현재 부평공원이 된 자리에 일제 강점기에 '홍중'이라는 군수공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군수공장의 종업원들 집이 지금의 부평2동에 수십 채가 있었기 때문에 이 곳을 '홍중사택' 또는 '히로니까사택'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후 '히로니까'가 '미쓰비시(삼능)'로 바뀌어 사택 이름도 '미쓰비시사택' 또는 '삼능사택'으로 바뀌었다. 삼능사택을 이후 삼능으로 줄여 부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삼능은 삼능사택에서 유래된 것이고, 일제강점기의 잔재다.

현재 부평대로에서 산곡동 방향으로 들어가는 산곡4동을 백마장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부평로에서 원적산길(옛 천마로)로 꺽어지는 삼거리 일대를 백마장 입구라고 불렀다'고 부평사 등은 밝히고 있다.
이는 1940년 4월 1일 당시 산곡리가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일본식 이름으로 '백마정'이 됐는데, 이 백마정이 백마장으로 바뀌고 그 입구가 백마장 입구가 된 것이다. 백마장은 일본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도로와 지명은 '산곡동 입구'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백마장이라 부르고 있다.

마을버스, 시내버스 등에서도 여전히 '삼능'과 '백마장'이란 표현을 접할 수 있다. 특히 부평구 상징인 '백마'에 대해서도 출처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재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 행정관청의 보다 세심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삼산동(三山洞), 삼립정(三笠町)에서 유래 가능
삼립은 러일전쟁에 참가한 일본 전함 '미가사마루'
 

삼산동이 일본식 지명인 '삼립'에서 유래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와 파장이 예상된다. 만약 삼산이 일본식 지명인 삼립에서 유래됐다는 주장이 타당성을 얻게 된다면,  관공서와 교육기관,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일제강점기의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 된다. 때문에 지명을 비롯한 공공기관 등의 명칭 변경이 불가피해 보인다.

아직은 삼산동이 삼립정에서 유래됐다는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 삼산(三山)이 3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에서 유래됐다는 객관적인 근거 또한 미약한 실정이다. 삼산동과 관련돼 옛부터 내려온 여러 지명이 있음에도 불구, 근거 없는 삼산이란 지명이 부지불식간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출간된 부평사에는 삼산동이란 지명에 대해 아래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삼산이란 지명은 조선 중기인 1789년 정조 17년 작성된 ‘호구총수’의 방리에 부평부 서면 소속 삼산이란 지명은 없었고, 필사본인 ‘조선지지’ 자료와 일제강점 초의 ‘조선전도부군면리명칭총람’에도 기재된 바 없다.
그러다가 1940년 일제가 왜식 ‘정(町)’을 사용한 ‘삼립정(三笠町)’이 등장한다. 광복 후 삼산동(三山洞)이 편제되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으나, 삼산이란 명칭의 정체성에 의문점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조선조 말까지 없던 삼산이란 지명은 일제의 잔재로 추정된다. 일본식 정명(町名) 삼립은 러일전쟁 때 일본 전함이었던 <미가사마루>의 삼립에서 ’삼(三)‘을 광복 후 동 이름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삼산동은 예전 부평군 서명 후정리(後井里) 지역으로 뒷 우물 또는 후정동이라고 하였다. 삼산동은 이 마을에 산이 셋이 있다는 뜻인데, 영성산(靈成山)과 장수 못은 이곳에 있으나, 조산(造山)은 계산동에 있으며, 장수 못은 산이 아니니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고 부평사는 지적했다.

그럼, "이 보다는 1924년 부평수리조합(한강수리조합)을 설치할 때 갈(葛)산(山)에서 영성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뚫고 ‘서부간선수로란 용수로’를 건설한 바, 그때 파내 쌓은 흙더미를 흔히 ‘흙터머지’라고 불렀고, 이 흙터머지를 소위 조산으로 보고 이에 영성산과 갈산을 합해 삼산이라 했을 가능성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삼산은 영성산과 갈산, 그리고 금산을 지칭하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금산은 저 멀리 청천동에 있어서 이 역시 삼산이란 지명에 이끌리어 지형을 견강부회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부평사 상임연구원을 지낸 인하대 김현석 강사는 “ ‘삼산동'의 ‘삼’은 일본식 정명인 ‘삼립’에서 따온 이름이고, 삼립은 일본 군함 ‘미카사마루(三笠丸)’에서 붙인 것으로 추정되고, 삼산동의 지명은 일본식인 삼립정에서 변형된 흔적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며, “대구 삼덕동도 일제강점기에서 삼립정으로 불린 바 있는 유사한 사례가 있고, 부평동·서초등학교명도 일제 때 소화동·서국민학교에서 나온 일본식 명칭의 잔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인천학연구원 김창수 상임연구위원도 2월 29일 본지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 '삼립정'의 ‘립’을 보면, 삼산동 명칭의 일제 잔재 가능성이 높다”며, “일제가 만든 '삼립정'은 세 개의 삿갓으로 풀이되는데, 삿갓이 ‘산’봉우리 모양이기 때문에 1946년 지명을 만들 때 어원적으로 해석, '립'을 '산'으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김 연구위원은 “삼산동에 소재한 세 개의 산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삼산(三山)’ 이란 지명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며, “출처가 불분명한 지명보다는 문화적 자산인 옛 부평지역 지명에 대한 활용도를 높이는 노력이 행정관청을 비롯한 여러 기관을 통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제 강점기(1918) 지형도, 속칭 ‘富平’일대.
지도에서 보는 금산은 현재 아파트형 공장이 위치한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갈산은 현재 삼산동의 엠코타운이 위치한 지역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출처: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반면, 삼산이란 지명이 삼산동 주변에 소재한 세 개의 산에서 유래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 또한 여전히 나오고 있다.

세일고등학교 임동윤 교사가 석사학위논문으로 작성한 <‘부평’의 지명 변동에 대한 지리적 해석 : 부평구와 계양구를 중심으로>에는 청천동의 金山(김(금)산, 청천동 440번지 ), 삼산동의 영성산(염성산), 부평동의 앞산, 뒷산 등이 있다. 김산은 현재 아파트형 공장이 건설 중에 있고, 산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 김산은 김해 김씨 종산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영성산(염성산)은 『부평군읍지』지도에 영성산, 『경기읍지』, 『부평부읍지』지도에는 염성산으로 나온다. 영성산은 “신령의 영험한 기운이 이곳에 있다”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염성산은 이곳에 염씨성과 성씨성의 종산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1970년까지 발행한 1/25,000 지형도에는 표시되어 있으나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 옛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영성산’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으며, ‘염성’보다는 ‘영성’이란 지명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모르고 있다. 삼산은 영성산(염성산), 갈산, 金(금)山을 말하고, 3개의 산이기 때문에 삼산동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지리 교사인 임 교사는 “여러 문헌을 조사하다 보니까 삼립은 일제 잔재가 분명하지만 굴포천ㆍ 원통천ㆍ청천석천 3개를 ‘삼강’이라고 부른 것처럼, 삼산도 영성산(염성산)ㆍ갈산ㆍ금산에서 착안돼 지명이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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