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곡2동 4통

위아래,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사는 도시생활에서 이웃들간에 서로 벽을 허물고 마음을 여는 동네가 있어 주변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
특히 이 동네는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주민의 마음을 어떻게 바꾸고, 참여하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어 다른 동네에도 본보기가 될 듯하다.  
1년 사이에 훈훈한 바람이 일고 있는 이곳은 산곡 2동 4통.
산곡동 현대부평몰(옛 현대백화점)에서 미군기지 담장을 따라가다 우성4차 아파트 앞을 지나치면 산곡남초등학교가 나오고, 이 학교 뒤편에 소방도로가 있는데 한신휴아파트 앞까지 이 도로 오른편에 위치한 동네가 바로 산곡2동 4통이다.
한신휴아파트 고층에서 내려다보면 미군부대를 가로질러온 철로가 이 동네 왼쪽을 울타리 짓고 있다. 프리상뜨 아파트 뒤편 철길 안쪽으로 있는 나대지에는 이 곳 주민들이 가꾸는 텃밭이 늘어서 있고 미군기지와 맞닿은 곳에 예닐곱 채의 판자집도 들어서 있다. 
최근 산곡초등학교 뒤편에 프리상뜨 고층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이 동네는 단독주택과 연립, 아파트 단지가 공존하게 됐다.

여느 도시 동네와 별반 다르지 않았던 이 동네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 매달 첫째주 일요일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동네 대청소를 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처음 한 두 번은 대청소에 나오는 주민이 많지 않았고, 서로 서먹했지만 석달, 넉달 이어지다 보니 참가하는 주민이 늘고, 대청소를 끝내 놓고는 자연스럽게 마을회의를 열어 살면서 불편한 점도 서로 나누게 됐다.
지금은 동네 주민의 30∼40%나 대청소에 참가하고 있으며,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나가는 부모들은 중·고등학생 자녀들을 대신 내보내기도 한다.   

이러한 동네의 변화는 올해 어버이날을 맞이해 처음 연 경로잔치를 통해 주민들에게 피부로 다가오게 된다.
마을 공터에 천막이 쳐지고 주민들이 손수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들이 펼쳐지면서 잔치 음식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노인들이 참석했다. 참석 주민이 자그마치 350명. 인근 통이나 주변 경로당에서도 잔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이곳 주민들은 “동네 아이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모셔오던 모습이 정말 보기 좋고 인상적이었다”며 “동네 어르신들이 한 곳에 모이면 아직도 그 때를 이야기하신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경로잔치는 주민들에게 다시 한번 내 부모와 주위의 노인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을 뿐 아니라 동네 화합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 잔치를 동네 청소비를 절약해 준비한 것도 자랑거리이다. 애초 가구당 월 3천원씩 모아 인부를 고용해 동네청소를 대행하게 했는데, 특정지역을 제외하고 주민들이 손수 청소를 하다보니 청소비 지출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러한 기분 좋은 변화의 산파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 동네 통장 이광주(48)씨이다.
지난해 4월 통장을 맡게 된 이광주씨는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서는 한 동네에 살면서도 이웃들간에 서로 얼굴도 잘 모르고 지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고, 주민들이 서로 만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주민대청소를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민의 마음을 움직여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데 큰 의미를 뒀다. 대청소에 나오지 않는 집은 벌금을 내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벌금제도는 아예 두지 않은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동네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좋은 제안도 많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올 추석을 앞두고는 건물 벽 등에 공동 페인트 작업을 실시했고, 마을 게시판도 설치해 주민들에게 여러 소식을 전하고 있다. 내년에는 연립주택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벽을 허물고 그곳에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또한 갈 곳이 없어 길거리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경로당을 지어줄 것을 구에 건의한 상태다.
이 통장은 경로당 건립과 관련해 경로당보다는 마을회관을 바라고 있다. 노인들뿐 아니라 주민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곳에서 마을회의도 열고 주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주민들이 스스로 운영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이 통장의 바람처럼 이곳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희망의 내일을 이야기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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