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내고장 부평의 어제와 오늘 ①

편집자 주> 본지는 ‘부평의 어제와 오늘을 찾아’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부평 지역의 과거와 발전과정에 대한 조명을 통해 향후 부평지역의 발전 방향을 그려보고자 한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인구 56만명의 부평구는 인천광역시를 구성하고 있는 10개 구·군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다. 그래서일까. 오랜 시간 ‘인천시민’으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부평 구민들은 스스로를 ‘부평사람들’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부평구가 차지하고 있는 행정구역상 면적은 인천시의 3.3%에 지나지 않는데도, ‘부평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심리적인 삶의 영역은 행정구역을 넘어 ‘부평’이라는 상상의 도시를 만들어 내고 있는 듯하다.

‘부평’과 ‘부평사람’의 실체를 찾아가는 일은 이러한 상상속의 ‘부평’을 현실의 부평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기원을 밝히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부평사람들의 삶에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평지역’이라고 언급할 때는 부평구, 계양구, 서구 등 3개 구를 통칭해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모두 1988년 서구가 신설되기 이전까지 인천시 북구가 포괄하고 있던 지역들이다.

계양구와 부평구는 1995년 제1경인고속도로를 경계로 해 분구되어 현재 부평구는 8개의 법정동, 22개의 행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때문에 엄밀히 말해 부평구의 역사는 부평지역의 남쪽 끝에 해당하는 공간을 그 대상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지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고려한다면, 부평구의 역사는 과거 부평도호부의 관할 속에 포함되었던 위의 3개 구를 아울러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부평구의 개발과 인구의 집중은 사실상 근대 이후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이전의 부평으로부터 근대 이후의 부평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보여지는 연속과 단절의 미묘한 차이를 추적해 가는 것이 현재 부평구가 갖고 있는 지역성을 찾아내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 줄 것이다.

▲ 18세기 편찬된 광여도에 수록된 부평부 지도

부평구에서는 1997년, 한 권으로 된 <부평사>를 발간한 바가 있다. 사실상 인천시 북구를 대상으로 해 집필된 이 책은 해방 이후 행정기관에서 펴낸 부평에 관한 최초의 통사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부평지역과 관련된 통사로 계양구청에서 발간한 <계양사(2001)>와 서구청에서 발간한 <서구사(2004)>도 함께 참고할 만하다.

이와 같이 행정기관에서 발간한 책들은 부평지역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종합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맡고 있는데, 이러한 성격의 문헌들은 이미 조선시대 이전부터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부평과 관련된 자료로 관에서 편찬한 대표적인 문헌이 읍지와 지리지 등이며, 부평의 읍지로는 1842, 1871, 1899년 무렵에 만들어진 읍지가 전해지고 있고,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는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의 관찬지리지와 <대동지지> 등 사찬지리지가 부평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보다 앞선 시기에 편찬된 <삼국사기> 지리지와 <고려사> 지리지도 과거 부평의 일면을 살펴보는데 참고가 된다. 근대 이전의 부평에 관한 기록은 대개 위의 문헌들과 <조선왕조실록> 등 연대기 자료에서 근거를 얻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관공서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이 편찬한 저서들도 눈에 띄는데, 부평문화원장을 지낸 적이 있는 조기준의 <부평사연구(1994 ; 1995년에 증보판 발간)>와 <지명유래지 ; 부평의 땅이름(1999)>, <부평인물사(2001)> 등은 부평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번씩은 찾아보게 되는 저서들이다. 그밖에 서구지역의 설화를 다룬 것으로 이원규의 <천마와 아기장수(2003)> 등의 책들이 있다.

글로 남겨져 있는 기록을 찾아보는 일은 과거를 알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한정된 정보만을 전해주고 있는 문헌기록으로는 과거의 사실을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근대 이후의 역사에 다가설 때는 더욱 그러한 목마름을 느끼게 된다.
최근, 문헌자료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것이 구술기록의 활용이다. 부평구의 경우를 볼때도, 일제시대 건설된 조병창, 한국전쟁, 미군부대, 산업화, 시장의 형성 등 근대 이후 부평구가 건설되는 과정 속에서 온 몸으로 시대를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사람들을 찾아나설 때다. 그들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부평의 잃어버린 고리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부평사람들’로 하여금 ‘부평’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부평의 역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감수 : 김현석·부평사편찬위원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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