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삐딱하게 들여다보기⑦
2월의 극장가를 가장 뜨겁게 달군 화제의 작품을 꼽자면 단연 <그때 그 사람들>이다.
이번 달 초 개봉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을 그의 왼팔이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저격한 1979년 10월 26일을 다룬 영화다. 역사적 사건을 영화화 한 것이 한두 차례가 아니건만 왜 이리 난리일까?
사건인 즉, 박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가 영화가 박 대통령 개인과 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걸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영화는 3분 50초가 잘려나간 채 관객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법부는 영화의 맨 앞 부마항쟁 기록 영상과 맨 뒤 박 대통령 장례 영상 부분, 그리고 ‘다카키 마사오’라는 만주 일본군관학교 시절 박 대통령 이름의 자막을 삭제하고 상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의도’와 ‘배후’를 심사하는 ‘그때 그 사람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법원의 이번 판결은 오버도 한참 ‘오버’다. 영화 시작 전에 자막으로 허구라고 밝히고 있는 이 영화 한편 때문에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거라 생각한다면 이는 지나친 과대망상이다.
하나의 창작물을 두고 정치적 의도가 어떠하네, 배후가 있네, 입방아질을 해대는 모양새는 어쩜 이리도 국가보안법과 꼭 빼닮았는지! 역대 대통령 중 국가보안법을 가장 제대로 활용한(!) 대통령이 박 대통령이란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 전반부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국가보안법 삐딱하게 들여다보기>에 실렸음직한 얘기를 나누며 키득거리는 장면이나 벌집같은 고문실에서 취조받고 있는 무고한(!) 시민들의 모습은 분명 20여년 전 과거의 모습이련만, 2005년 지금도 영화 한편을 두고 정치적 의도니 배후니 따지며 ‘사상검증’을 하려 달려드는 걸 보면 ‘그때 그 사람들’의 시대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국가보안법 정신’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3분 50초를 가위질한 이들은 바로 ‘그때 그 사람들’이다. 그들은 분명 20여년 전 총에 맞아 죽거나 사형 당해 죽었는데 2005년 한복판에서 괴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엄청난 내공이다.
이번 <그때 그 사람들> 소동은 지금까지도 건재한 ‘그때 그 사람들’의 정신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예전 군사독재 시절에나 민주화운동과 인권을 억압하는 도구로 쓰였지 요즘은 안 그렇다고, 그러니 분단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그때 그 사람들> 소동은 이야기한다. 2005년이나 1979년 그때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고. ‘그때 그 사람들’의 웃기는 비극을 만든 것도, 지금 영화 하나 갖고 난리를 피우는 것도, 기원을 따져보면 모두 정권에 대한 욕심이 상식과 인권을 짓밟는 ‘국가보안법 정신’에 기인한 것이라고.
삭제 당한 부분이 어떤 장면인지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법원의 판결대로 부분 삭제당한 영화를 본 결과, 지만씨와 박 대통령 추종자들의 행동이 상당히 큰 실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앞과 뒤의 기록영상을 삭제하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그때 그 사람들’의 명예는 훼손되지 않았을 것이다. 앞뒤의 역사적 사실과 가운데 알맹이의 영화 부분이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그때 그 사람들’을 희화시킨 이 영화의 줄거리가 단지 허구일 뿐이란 것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3분 50초가 가위질 당하면서 영화의 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박 대통령이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나 경호실장, 비서실장 등 실존인물들의 허무맹랑한 행동들이 역사적 진실인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가위질이 영화의 허구를 진실로 둔갑시켜 버린 것이다. 오히려 이번 소동으로 ‘그때 그 사람들’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았던지, 그 시대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권력놀음으로 점철된 비상식적인 시대였는지, 또 그 시대가 2005년까지 어떻게 이어져오고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게 됐으니. 이런! 이번 소동을 일으킨 이들은 과연 이런 결과를 예측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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