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주인으로 나서는 청소년운동 필요성 공감

‘청소년은 교육해야 하는 대상, 무언가 가르쳐야 할 어린 아이’라는 통념을 깨고 청소년이 주인이 되는 청소년운동, 청소년 스스로 판단하고 나서는 청소년운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작년 10월부터 두 달 동안 사단법인 ‘내일’청소년생활문화마당(대표 민영환 신부)이 인천지역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는 청소년의 요구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보여준다.(본보 2004년 12월 22일 보도)
인천지역의 청소년들은 성, 가정환경, 성적, 외모, 종교로 인해 차별 받지 않을 권리, 교사나 다른 학생의 신체적 위협이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원하는 여가활동이나 모임을 할 수 있는 권리 등 여러 면에서 권리를 보장받고 싶어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한창 외모에 신경을 쓸 나이인 청소년들에게 두발과 복장의 자유는 거의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에 청소년들의 머리와 옷이 자유분방한 것은 방종일 뿐이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많은 학교에서는 ‘학생답다’는 미명 아래에 학생들의 머리와 옷을 규제한다. 문제는 그 규제의 근거가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는 교칙(학생선도규정)에 따른다는 것. 학생들은 무엇보다 자신들을 규제하는 교칙에 학생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것에 대해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인천지역 청소년들은 78%가 교칙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 중 절반 이상(63%)은 ‘학생의 의견 반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학생’ 없는 ‘학생회’, ‘청소년’ 없는 ‘청소년운동’

 

이번 설문조사를 진행한 내일청소년생활문화마당은 창립 10주년을 맞아 작년 11월 청소년운동의 방향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한 바 있다. 거기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무엇보다 ‘청소년이 주인이 되는 운동’의 필요성이었다.
내일청소년생활문화마당 김진덕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많은 시민단체와 복지단체에서 벌여온 청소년운동이 베푸는 차원의 지원에 머물러 있다고 이야기한다. 정작 청소년운동의 주인인 ‘청소년’은 없는 어른들의 운동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청소년운동의 산 역사라 할 수 있는 내일청소년생활문화마당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청소년이 주체가 되는 활동이다.
“청소년운동 15년을 하면서 이제는 청소년을 위한 지원을 넘어서 청소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새로운 청소년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8세 이상 선거권 보장이나 청소년들의 사회참여, 학생회 지원을 역점 사업으로 두고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물론 90년대 초반 참교육운동의 성과로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 직선제 학생회가 생기긴 했지만 아직은 학생회가 학생들의 대의기구로서 제자리를 잡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생회 의결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했으며(60% 이상) 학생회의 의결사항이 학교 운영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답도 50% 가까이 나왔다. ‘학생회’에 ‘학생’은 없는 것이다.

 

청소년운동, 인권에서 다시 시작한다

 

내일청소년생활문화마당뿐 아니라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에서도 청소년 스스로 움직이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04년 한 해 동안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청소년들이 자신의 권익을 찾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청소년 5대 인권운동’을 선정하고 벌여온 것이다. △0교시 폐지투쟁 △인천외고 파면철회 운동 △18세 선거권 낮추기 운동 △학내 종교의 자유 투쟁 △학생회 법제화 운동이 그것.
특히 서울 대광고등학교 강의석군의 단식투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학내 종교의 자유 투쟁이나 인천지역 최대 현안 중 하나였던 인천외고 파면철회 투쟁은 네티즌 청소년들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냈다. 또한 0교시 폐지투쟁 역시 강요된 입시제도에 대해 청소년인권 차원으로 접근해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여전히 청소년은 이 운동에서조차 주인으로 나서기엔 미흡함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이강훈씨는 “홈페이지 참여공간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더 이상 조직적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며 “이후 청소년 인권운동에 있어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틀과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인권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 “청소년이 무슨 인권운동이냐”는 식으로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각이다. 여전히 청소년은 ‘어른들이 훈계해야 하고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라는 인식이 강한 까닭이다.
토론회에서 노현성 인천외고 파면철회 학생대책위원장은 “무엇보다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고, ‘학생이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무슨 인권이야’ 하는 생각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인권을 침해당하고 잘못된 학사운영을 보면서도 가만히 있는다면 그건 학생 탓”이라면서 “학생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청소년운동”이라고 덧붙였다.

 

학생회 법제화 등 제도적 뒷받침 마련돼야

 

사실 청소년문제의 핵심은 노현성군의 이야기처럼 ‘청소년을 사회구성원으로, 주체로 보는가 그렇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의 과열된 입시구조는 청소년을 주인으로 보기보다는 기성세대가 짜놓은 틀에 맞춰 살아가는 종속적인 존재로 보게 만든다. 그래서 ‘학생회 법제화’ 등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단체 역시 지금까지 해왔던 시혜적 지원을 넘어서 청소년들의 자주적인 활동으로 청소년 스스로 사회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단체 혼자서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많은 단체들과 연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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