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곡2동 23통에서 도장 파는 김도진

산곡2동 경남5차아파트와 우성5차아파트 사이길 중간쯤에 위치한 5층 짜리 상가건물에는 조그마한 철물점이 하나 붙어 있다. ‘경일사’라는 간판을 내건 이 철물점의 주인은 23통 통장이기도 한 김도진(50)씨. 김씨는 지금부터 4년 전에 이곳에서 도장과 열쇠 파는 일을 시작해 2년 전에는 옆에 있던 철물점이 문을 닫자 재고품을 넘겨받아 같이 운영하고 있다.
산곡2동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김씨가 뒤늦게 도장 파는 일을 시작한 것은 다니던 전자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부터. 어렸을 때 앓았던 다리의 고관절 수술로 더 이상 힘든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얼 할 수 있을까 찾던 중 성격이 꼼꼼한 데다가 어렸을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해 손재주가 있는지라 도장 파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칼을 잡고 손수 도장을 팠지만 2년 전부턴 아예 자동화 기계를 들여놓았다. 컴퓨터로 이름을 입력하고 글씨체를 고르면 레이저가 자동으로 도장을 파기 때문에 일이 한결 쉽다.
그러나 서명이 날인과 거의 같은 효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서명이 보편화되어 도장을 파러 오는 사람이 줄어드는 추세에 목돈 700만원을 들여 도장 파는 기계를 들여놓겠다고 했으니, 당시 아내의 반대에 부딪힐 만도 했겠다 싶다. 나무도장 하나 파주고 4천원, 뿔도장은 하나에 1∼2만원을 받는데 한 달에 고작 20여개 파다보니 작업은 손쉬워졌지만 아직도 기계 값을 빼지는 못했다. 은행이나 관공서 등이 근처에 있으면 일거리가 많겠지만 주택가라서 수요가 많지 않다. 그러나 일자리 없이 노는 것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좋다. 
도장 파는 일이 재미를 느끼게 한다면 열쇠 파는 일은 보람도 가져다 준다. 간혹 열쇠를 잃어버리고 집에 들어가지 못해 찾아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 잠긴 문을 열어줄 땐 기분이 참 좋다.
도장 파는 일이 좋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라고 솔직히 말하는 김씨. 그의 말에서 논과 밭이었던 동네가 아파트 단지로 변하고 손재주 대신 기계가 도장을 파는 세상으로 변했듯 먹고사는 방식이 많이도 변했음을 실감한다.
또한 ‘먹고살기 위해 각자 일을 찾고 그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것이 평범하지만 곧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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