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지체장애인협회 부평구지회 청천1동 분회장 이길종씨

    97년 건설현장 사고로 장애 입고 한동안 술로 살아
    독거노인 도시락배달 차량봉사

    동료 장애인들에게 안부전화 일상
    장애인 위한 작은 공간 마련 꿈

새해 들어 많은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꿈과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결심을 하고 설계를 한다.
청천1동사무소 뒤편에 위치한 낡은 연립주택 2층에서 세 자녀와 함께 살고 있는 이길종(41)씨도 새해 꿈 하나를 키우고 있다. 청천1동에 사는 장애인들이 맘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작은 쉼터를 동네에 마련하는 것이다. 
지체장애 5급인 이씨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함께 모여 대화하고 서로에게 위안과 힘이 돼 줄 수 있는 공간 하나 없는 것이 늘 안타까웠다. 행정기관에 등록된 장애인 수는 청천1동에만 자그마치 850명. 이런 저런 사정으로 등록하지 않은 장애인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가 집밖으로 나와봤자 여러 불편이 뒤따르는 것은 제쳐놓더라도 맘 편히 갈 곳이 없는 실정.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고, 어려움이 생겨도 혼자 감당하기 일쑤다.   
본인도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의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씨는 동네에 작지만 장애인을 위한 소중한 공간을 만드는 걸 올해 목표로 정했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당장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정부로부터 월 60만원을 지원 받는 이씨는 아내와 이혼하고 재작년 3월부터 월세 25만원 좁은 연립주택에서 7살, 10살, 16살 먹은 세 자녀와 살고 있다.
혼자라면 어떻게 살겠지만 ‘어떻게 하면 아이들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늘 안고 산다. 다행히 아이들이 성실하고 해맑아 주위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커주는 게 고맙고 다행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씨는 장애인들이 찾아와 물 한 모금이라도 마시고 갈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구청에 몇 번 문을 두드렸지만 개인이 하기에는 힘들다 하고, 바자회를 열어 기금을 만들어 보라는 조언을 듣기도 하지만 그 또한 자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씨는 지난해 말부터 사단법인 인천시지체장애인협회 부평지회 청천1동 분회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가 장애인의 삶을 받아들인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이씨는 지난 1997년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허리를 다쳤다. 그리고 5년 후인 2002년 수술 부위가 재발해 다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후로 가만히 앉아 있거나 서 있으면 비장애인과 달라 보이지 않지만 오래 앉아 있거나 서 있질 못한다. 때문에 더 이상 직장생활이 어렵게 됐다.
직장이 있고, 어느 정도 여유 있는 가정을 꾸려왔던 이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사고는 지체 장애라는 육체적 고통보다 더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고통을 안겨줬다.
“그 후로 바닷가에 많이 갔죠. ‘이대로 살 수 있을까, 이대로 살아야 하나’를 숱하게 고민하며 여러 번 죽고 싶었죠. 한동안 술로 살아보기도 하구요”
그러다 이씨는 우연한 기회에 장애인으로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어느 날 장애인신문을 보게됐고 그 속에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라고 왜 못살겠나’ 하는 마음을 다잡은 것. 그 후로 부평구장애인협회를 찾아갔고 거기서 동료들을 만났다. 
“처음엔 밥을 같이 못 먹었어요. 나 자신이 장애인이면서도 장애인에 대한 거부감, 선입견이 있었나 봐요. 같이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레 없어졌죠”
최근들어 이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매주 화요일마다 독거노인 사랑의 도시락 배달센터에 나가 차량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병·의원 등을 찾아다니며 무료진료 등 장애인이 도움 받을 수 있는 길을 알아보기도 했다. 청천1동 분회에 속해 있는 장애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찾아가는 것도 그의 중요한 일상이 됐다.
“장애인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 보다 장애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장애인들이 서로 나누고 도울 수 있는 것도 참 중요하지요. 그러기 위해선 서로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많은 장애인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고, 그 꿈이 모아지면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장애인으로서,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먹고 살길이 막막하지만 더 낮은 곳, 더 큰 세상을 볼 줄 알게 된 이씨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래본다.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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