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도 ‘삶’이 있고 ‘생활’이 있다
장애인에게도 ‘삶’이 있고 ‘생활’이 있다
  • 이영주 기자
  • 승인 2005.09.07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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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생활권 찾는 부평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보면 우선은 불쌍한 마음부터, 돕고 싶은 마음부터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진짜 신체적 장애로 인해 생활의 불편을 겪고 있는 장애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제대로 돕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어설픈 동정은 장애인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한다면, 아주 단순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장애인들 역시 숨 쉬고 밥 먹고 배설하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비장애인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장애인도 인간이라는, 이 당연한 사실이 무시되기 일쑤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만들 때 장애인들이 오갈 수 없는 무수한 턱들이 당연지사로 생기고 중학교까지 시행되고 있는 의무교육에서도 장애인만큼은 열외로 취급되고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
그래서, 여기 우리 구에 있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의미는 더욱 크다. 장애인 당사자 입장에 서서 그들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 의미 있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시혜에서 자립으로, 새로운 장애인운동을 열다

부평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대표 김경현)가 만들어진 것은 작년 하반기. 작년 초 진행된 공공시설 장애인 편의시설 실측조사에 참여한 장애인들이 모여 장애인 스스로 장애인 권익을 찾을 수 있는 단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천에 8만4천명의 장애인이 있다는데 모두 어디로 갔을까, 왜 바깥에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처음 고민이었단다.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장애인들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해 10월 장애인 자조단체 회원들과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장애인 자립생활 이념’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장애인 자립생활 이념이 널리 퍼져 있고 그에 근거한 장애인 지원 사업이 이뤄지고 있는 일본으로 연수를 다녀왔다. 장애인들의 신체적 장애에 대한 활동보조를 통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회 속에서 이웃과 더불어 일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는 일본의 모습을 통해 장애인 자립생활의 의미를 실체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인 자립생활 이념은 장애인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
시혜가 아닌 자립으로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인’이 되는 장애인

 

장애인 스스로 당당하게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립생활

매월 1회 진행되는 동료상담 모임

장애인 자립생활 이념이란 말 그대로 장애인이 스스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장애인이 불쌍하니 뭐 하나 지원이라도 더해주자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서, 스스로 자신의 삶의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부평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센터에 소속된 스텝 외에도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돕는 생활보조인, 이용회원, 동료상담원 등 장애인들 스스로 각자 제 역할을 가지고 활동을 한다. 물론, 이 모든 활동은 유급이다. 월 5천원 이상의 CMS(자동이체) 회원이 돼야만 이용회원으로 생활보조인의 보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무급 자원봉사자들이 보조를 해줄 경우 장애인들은 그에 대해 어떠한 요구도 할 수 없고, 서비스에 대해 선택할 여지도 없어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장애인 스스로 필요한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생활보조로 활동이 용이하게 되어 다시 사회에 기여하는, 인간다운 장애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적은 액수라도 꼭 유급 회원이 되시길 권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애인 자립생활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 사회에서 생활보조인이든, 이용회원이든 유급이라는 것을 꺼려하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김경현 대표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활동보조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지역사회에서 보람을 찾는 장애인들

김 대표의 말대로 부평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는 스텝들은 저마다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물론 스텝 중에는 비장애인도 있지만, 많은 수가 장애인이다. 그나마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경증장애를 가진 스텝들과 활동보조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역할로 또 다른 장애인들의 생활을 보조한다.
부평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제일 고참 활동보조인인 계율(27. 뇌성마비 3급)씨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대필, 대독 서비스를 하거나 길안내 서비스를 한다. 그리고 하지장애를 가진 분들의 이동을 돕기도 한다. 지난 달 인천장애인교육권연대가 교육청에서 농성을 할 때도 계율씨는 그곳에서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장애인들을 도우면서 계율씨는 그들의 사회생활을 돕는 데서 보람을 느낄 뿐 아니라 오히려 배우는 것이 많았다고.
센터의 총무를 맡고 있는 이경희(39. 척추장애 3급)씨 역시 꼼꼼한 성격으로 센터의 안살림을 도맡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장애인엄마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비장애인 활동보조인인 조정임(41)씨는 지금껏 다른 자원봉사를 많이 해봤지만,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의 활동만큼 보람 있는 일은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조씨의 호탕한 목소리와 깔끔한 살림솜씨는 장애인들에게 더없는 용기가 되고 있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날을 위해

계율씨나 이경희씨, 조정임씨 외에도 부평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삶의 기쁨을 찾아가는 이들은 여럿이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 자립생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 센터 식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장애인에게도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이 보장돼야 하고 또 장애인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애인 자립생활의 모델을 만드는 다양한 시도와 더불어 지역사회의 여러 단체와 연대해 법적, 제도적 변화를 위한 싸움도 벌일 것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고 장애인 스스로 건강한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는 부평구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