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소리꾼, 청천2동 풍물단장 심해랑씨

퓨전 요리, 퓨전 판타지 소설, 퓨전 경영 등 언제부턴가 ‘퓨전’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퓨전이라는 단어는 융합을 뜻하는 외래어.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신선함과 신비감을 준다.
그 맥락에서 판소리와 풍물 등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해 전혀 새로운 소리, 풍물을 선보이는 사람도 있다.
‘퓨전 소리꾼’. 부평풍물패연합의 총무이며, 청천2동 풍물단장인 심해랑(45)씨에게 걸맞는 호칭이다.
부평에서 풍물을 한다는 사람이면 심 단장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게다. 개인적으로는 잘 몰라도 풍물대축제나 청천2동 축제에서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그와 그의 동료인 청천2동 풍물단의 모습을 한번쯤을 보았을 것.
원색의 색동저고리와 치마에 쪽도리, 짧은 치마에 원색의 스타킹 그리고 신사모, 종이와 천으로 만든 인형을 무등 태운 남장 여인… 무대에 오른 이들의 차림새만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풍물소리와 더불어 풍로와 맷돌, 디딤이 돌, 솥단지 등으로 갖가지 소리를 내고 가락을 만들어 관객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무대 위에서의 공연시간은 짧지만 무대를 오르기 위한 이들의 과정은 길고, 수많은 노동과 땀이 뒤따른다. 이들은 거의 매일 주민자치센터에 모여 연습을 한다. 특히 심 단장은 단원들을 지도할 뿐 아니라 무대에 오를 의상을 손수 바느질해 만들고, 무등이를 만들기 위해 한 달 동안 고생하기도 한다. 
심 단장이 옛 농기구나 생활도구에서 소리를 찾아내고 그 소리를 가락으로 만들고, 의상 또한 옛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하는, 풍물과 소리에 ‘퓨전’을 시도한 것은 2년 전부터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부평구선거관리위원회의 홍보대사였던 심 단장은 갈산동에 집단 거주하는 사할린동포들에게 선거를 안내하는 차원에서 공연을 펼쳤다. 옛 시절을 그리워 할 노인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퓨전’을 시도한 것이 큰 호응을 얻었다. 
45세, 세 딸의 엄마이자, 남편과 사별한 한 여성인 심 단장의 이런 열정은 어떻게 생긴 걸까?
심 단장의 할머니는 꽤나 실력이 있는 소리꾼이었다고 한다. 심 단장은 어려서부터 그런 할머니 무릎 위에서 할머니의 소리를 들으며 자연스레 소리를 익히게 됐다. 그러나 집안에서는 심 단장이 소리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 대신에 태권도 도복을 입힌 것이 지금 그를 태권도 공인 4단의 유단자로 만들었다. 그 덕으로 최근에는 태권도의 품새를 딴 태권무(춤)를 구상하고 연출해 자신의 모습을 비디오로 담아 풍물단원들에게 가르쳐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끼와 열정이 살아있는 풍물과 소리, 춤이라는 심 단장의 지금의 모습 뒤에는 40대 중반 한 여성으로서의 그늘도 드려져 있다.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낳아 살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95년 충청도에서 낯선 부평에 올라온 심 단장은 한동안 너무 허전하고 삶에 의욕을 잃고 있었다. 그러던 중 버스를 타고 가다 풍물소리를 듣고 무작정 내려 찾아간 곳이 ‘잔치마당’이었다. 그는 그 곳에서 풍물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인연으로 청천2동 풍물단장이 됐다. 
주변에서 방송출연을 권하고, 실제 방송에도 출연한 바 있을 만큼 이제 꽤나 유명인이 된 심 단장에게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한적한 곳에 연수원을 만들어 그곳에서 국악학원을 운영하고 주말이면 동네 주민들을 위한 국악교실을 여는 것. 연수원 한 귀퉁이에는 소리와 관련된 옛 농기구며, 생활도구를 모아 작은 박물관을 꾸며 놓는 것이다.
또 한가지 바람은 아직 부평의 풍물가락이 없는 가운데 부평의 풍물가락을 찾거나 만드는 것이다.
심 단장은 자신이 만든 노래하나를 보여줬다. 풍랑과 짠물, 장수산 등 인천 부평을 연상케 하는 노래 말이 들어있는 ‘인천아리랑’이라는 제목의 노래였다.
심 단장은 이 곡이 담긴 음반을 내년 초에 낼 계획이다. 부평을 사랑하고 풍물과 소리를 아끼는 심 단장의 열정적인 삶은 그를 보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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