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공인노무사


“6~7년째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제 법안 통과 됐으니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요?”
“2002년 6월 27일 파견직으로 입사해서 파견 2년, 계약직으로 현재 3년차입니다. 5년을 다닌 셈인데, 다른 계약직 사원들은 계약기간 3년이 만료되고 모두 해고된 상태입니다. 저 역시 해고를 예상하고 있는데, 비정규법안이 통과한 지금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지난 11월 30일 비정규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인터넷에는 정규직에 대한 기대를 담은 글들이 꽤 올라와 있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정규직 가능성 없음’이다.


대량해고와 비정규직 확대만 있을 뿐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비정규 관련법 중 핵심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이라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기간제(계약직) 노동자를 2년 동안은 제한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되,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것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 현재도 퇴직금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1년 미만의 단기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노동자들이 계약직의 60%를 넘고 있다. 또한 경총이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업의 90% 가까이가 2년 후 정규직화가 아닌 대량해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마당에 어느 사업주가 2년 지나 곧이곧대로 이들을 정규직화 시키리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나마 있는 정규직도 합법적으로 계약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니, 바야흐로 ‘모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라는 신작로(新作路)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다.


그림의 떡인 차별시정 제도

정부에서 비정규 보호방안이라고 강조하는 것 중 또 하나가 차별시정 제도이다. 즉 비정규 노동자가 동일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에 비해 임금이나 기타 근로조건에서 불리한 처우를 받게 될 때는 노동위원회에 차별 시정요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규직 노동자조차도 재직 중에는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에 대항해서 법적 절차를 밟기가 힘든데, 하물며 고용 여부가 전적으로 사용자 손에 달려있는 비정규직이 해고를 무릅쓰면서 어떻게 차별시정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또한, 노동위원회에서 차별이 확정된다 하더라도 사용자가 이에 불복해 대법원까지 가게 되는 경우, 자신의 계약기간보다도 더 긴 수년을 무슨 수로 버틸 수 있단 말인가? 이야말로 등 가려운데 다리 긁고 있는 격이다.


‘보호’가 아니라 진정한 권리보장을 위해

노동계와 경영계, 노동전문가들이 이번 법안 통과로 인한 2년 뒤 계약직의 정규직 전망을 놓고 대량해고 불가피 등 암울한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유독 정부·여당만이 2년 후 비정규직이 정규직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차별과 가난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 자본을 등에 업고 그들에게 피눈물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특단의 후속조처가 따르지 않으면 비정규 노동자들을 보호하려고 만든 법안이 되레 2년마다 고용불안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나아가, 이 땅의 노동자들은 보호가 아니라 진정한 권리보장을 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영미
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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