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수입개방 압력 앞에 목숨 걸고 싸우는 농민들에게 지난 연말은 잔인했다.
사상 초유의 폭설은 두 농민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한 농민들의 가슴을 또 한 차례 무너뜨렸다. 


폭설로 무너져 내린 농가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12월 29일, 인천지역의 대학생, 사회단체, 민주노동당이 함께 전북 정읍으로 복구 지원활동을 갔다.
동학농민혁명의 진원지로 관군과의 싸움에서 첫 승리를 거둔 황토현 전적지가 있는 정읍은 하루만에 34cm의 눈이 내려 20년만의 폭설을 기록했으며, 이후 내린 눈이 170cm를 넘었다고 하니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조차 어려웠다. 


사진 제공 ·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태어나서 그토록 많이 쌓인 눈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겨울 논바닥의 흙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었다. 곳곳에는 무너진 축사와 그 사이로 젖소들이 애처로이 서있었으며 간혹 무너진 집터도 보였다. 우리가 간 덕천면 도계리는 소 사육으로 유명한 곳으로 농가 수입의 대부분을 소 사육이 차지하는 곳이다. 
팀을 나눠 각각의 복구 현장으로 향했고, 우리 팀이 나간 곳은 역시 무너진 축사였다. 축사 3채 중 2채가 무너졌다. 눈의 무게로 아치형의 철근들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친 것을 보니  더 이상 감상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며 널부러져 있는 슬레이트와 지지대 등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그때부턴 연신 눈을 퍼내기 시작했다. 단단히 얼은 눈은 가뜩이나 익숙하지 않은 삽질을 더욱 고된 작업으로 만들었다.


잠시 짬을 내 옆 축사에서 해체된 철골을 나르는 농민의 소처럼 선한 얼굴을 보니 까맣게 타들어 갔을 저 가슴은 오죽 할까, 이 땅에서 농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힘겨운 것일까, 애꿎은 생각에 푸른 하늘만 원망했다. 
한 아저씨는 축사를 짓기 위해 정부에서 융자금 등 1억여 만원을 대출받아 아직 그 절반도 갚지 못했다며,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려 막막해 진 삶을 한숨짓기도 했다. 
반나절을 거쳐 축사 한 채를 겨우 정리하고 나니 앙상하게 남은 몇 몇 철골사이로 황량한 바람만이 지나갔다.  
다른 팀들은 아직 무너지지 않은 축사위에 올라가 하루 종일 눈을 치워냈다고 했다.
작업을 끝내고 마을회관에 모여 동네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뉴스에서 폭설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동네 어른들은 전국적으로 폭설피해 지역에 군인 등 모두 6만 명 정도가 복구 작업에 나섰지만 티도 안 나는 실정이라며, 복구가 늦어질수록 그만큼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더 이상 눈이 오지 않고, 1월경 눈이 녹으면 무너진 철골 등을 치우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달려가 우리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민들에게 힘을 보태주었으면 좋겠다.

이소헌 ·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갈산1동 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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