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에서의 지진과 해일로 15만명도 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수는 자고 일어나면 몇 만 명씩 불어났고, 바다 속 땅이 잠시 흔들렸을 뿐인데 진앙지에서 먼 섬과 육지들까지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말았다. 인류가 이루어놓은 문명을 비웃기라도 하듯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단말마의 비명소리뿐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었다.
1천여명도 넘는 사람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얼음보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26일 동안 단식을 하고, 마침내는 물과 소금까지 끊은 채 목숨을 걸고 투쟁했으나, 한나라당과 야합한 열린우리당은 국보법을 2월 임시국회로 미뤘으며 과거사법, 사립학교법 등 소위 개혁입법들도 모두 물 건너 가버렸다. 나라 안팎의 일들로 새해를 맞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인천에서 열린 우리민족대회가 약간의 위안을 주기는 했지만, 작년 한 해 우리나라와 인천에는 정말 열통 터지고 분통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나라당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희대의 의회 쿠데타로 온 국민의 가슴에 못을 박더니, 헌법재판소는 행정수도 위헌 결정으로 충남·북 도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말았다. 열사의 모랫바람에 눈도 못 뜰 지경인데,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지켜주겠다는 것인지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부대는 오늘도 병영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있으며, 아, 그렇게 살아 돌아오고 싶다던 김선일은 결국 목이 잘린 후에야 제 나라로 돌아오고 말았다. 당연한 상식인 공무원노조를 결성하려던 전국 수백이 넘는 공무원들은 자리에서 쫓겨나 감옥에 가있거나 거리를 떠돌고 있고, 인천 경기 유일의 텔레비젼 방송사인 경인방송은 방송을 사유화하려던 소유주의 무책임한 폐업 결정 끝에 결국 정파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말았다. 굴비 상자와 돈 상자도 구별하지 못하는 인천시장 때문에 타지역의 친인척이나 친구들을 만난 인천시민들은 공연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으며, 인천의 명운이 걸린 제2연륙교 주경간 폭과 관련해 인천시의 고위공무원들은 800미터 이상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의 편을 들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훼방을 놓았다. 일년 내내 싸우기만 하던 지방의회 의원들이 외유에는 의견이 아주 딱딱 맞아 해외로, 해외로 떠났다.

올해, 을유년은 ‘을씨년스럽다’는 말의 어원이 되기도 한 소위 을사‘보호’조약 100주년이 되는 해이며, 다시 육십갑자가 돌아와 해방된 지 환갑이 되는 해이며, 굴욕적인 한일 수교 40년이 되는 해이며, 또한 6·15 공동선언 다섯 돌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는 작년 같은 가슴 아프고 울화통 터지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인천에서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으면 우리는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친일한 자들의 자손은 만대까지 떵떵거리며 잘 살고, 독립 운동한 분들의 자손들은 빌어먹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불의와 배신과 협잡과 술수가 정의와 신의와 정도를 이기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엄연한 실체인 우리 민족의 반쪽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진작에 관속에 처박았어야할 국보법을 아직도 꼭 끌어안고 있는 자가 야당 대표로 있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다행히 새해 들어 남북정상회담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다. 또 ‘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와 북이 함께 지은 평양의 빵공장에서 북녘 어린이들을 위한 영양 빵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오는 3월 8일부터 평양의 아이들은 우리가 보낸 기계와 밀가루로 만든 빵을 맛있게 먹을 것이다.
2005년을 남과 북, 대기업과 중소기업, 첨단산업과 전통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시골과 도시, 수도권과 지방, 중산층과 서민층이 함께 잘사는 원년으로 만들자.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들은 모두 무덤으로 보내버리고 다시, 잃어버렸던 공동체를 회복하는 한해로 만들자. 나부터 다시 시작하자.

 

 

신현수·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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