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간첩은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이며, 이 의원(간첩한데 이런 호칭이 가당한가?)은 1992년 북한노동당에 현지 입당해, 당원부호 <대둔산 820호>를 부여받고 현재까지 암약해 오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폭로한 사람은 공안검사 출신의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다. 발언장소는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이다.
이런 상황이면 좀 놀래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같은 한나라당 김기현 의원은 국회프락치사건이 일어났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국민들이 충격에 넋이 나가지는 않더라도 혀라도 차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국민들은 반응이 없다.
이유가 있다.
수구세력들은 단순히 ‘안보불감증’이라고 폄하하고 싶겠지만, 진실은 시민들이 사안을 이미 꿰뚫어 보는 정치적 안목의 상승에 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주성영 의원은 ‘정치적 수사’라고 발을 빼고, 김기현 의원은 “간첩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고 황당한 변명을 했다.
시민들은 이들의 변명에 앞서 별일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너무도 많은 간첩사건을 목격했으며, 그들이 한번씩 한반도의 남쪽에 나타날 때마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북한에 대한 절대증오를 키우며, 이런 불안한 세월에서 ‘반공’만이 우리를 지켜주는 이념적 무기임을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의 진전에 의해 대한민국 현대사에 석연치 않은 진실의 조작과 왜곡, 우리를 지켜준다고 믿었던 ‘반공’의 철가면 뒤에 숨어 움직이는 음모의 역사가 있었음이 계속 밝혀지고 있다.
간첩조작 사건들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1950년대 야당 지도자 조봉암선생을 간첩으로 몰아 살해했던 진보당 사건에서부터 최근에는 자신의 부인 수지김을 살해한 윤태식과 국가기관인 안기부가 공모해 피해자를 간첩으로 조작했던 사건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간첩조작 사건들이 있었다.
조작자들은 ‘국가’, ‘보안’, ‘법’이라는 미명들을 괴이하게 조립해, 피 냄새 나는 살육의 도구로 작동시키며 고문과 파괴를 서슴지 않고 빨갱이 사냥을 자행해 왔다.
반공은 본래의 의미를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지난 반세기 토막 난 한반도의 남쪽을 지배한 서슬퍼런 난도였다. 그 어지러운 칼날에는 정적에서부터, 막걸리 잔에 묻어나는 한숨 섞인 푸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위상과 말에 대해 피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마녀사냥의 뜨거운 화인은 ‘간첩’이었으며, 그들 앞에서 읊어대는 사제들의 주문은 ‘국가보안법’이었다.
그리고 그 후예들이 다시 냉전시대의 흘러간 노래, ‘국가보안과 간첩’ 타령을 읊어대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외치는 국가보안과 간첩에는 과거와 같은 결기가 없다. 다분히 ‘수사적이고, 대체적이며, 카더라’식의 표현에서 묻어나는 언어희롱적 작태가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면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혼돈일 것이다. 시민의 정치적 안목을 오리무중으로 몰고 가 역사와 정치의 진실에 대한 판단을 포기하게 하는 것. 또한 지리멸렬한 토론과 국회의 공전을 통해 아무것에도 기대하지 않는 정치적 허무를 심어주는 것.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간첩소동’을 통해, 시민들의 정치적 무력감을 위장된 애국주의로 전화시켜 시민 스스로를 위로케 하는 이데올로기적 마취를 유포하는 것이다.

극우 논객 지만원이라는 사람조차 기존의 우익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지키기 위해 보수인 척 할 뿐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제 시민의 말과 생각을 난도질했던 국가보안법을 제거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러나 형장으로 사라져야 할 국가보안법이 우리 시민사회에 다시금 협박을 하고 있다. “너! 간첩이지?”라고.

 

인태연·부평신문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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