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숙 (사회복지학 박사, 사단법인 ‘지역복지센터 나눔과함께’ 이사)

 

장애인이 또 추락사고를 당했다. 지난 달 부천역에서 시각장애인이 점자 블록을 찾다가 발을 헛디뎌 선로에 떨어져서 사망한 데 이어, 이번 달에도 동대문운동장역 승강장에서 똑같은 이유로 선로에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안전펜스나 스크린도어 등의 안전시설만 설치되었더라도 피할 수 있는 사고였다.

극단적인 사례일지 모르나,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이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공공연한 사실을 대변하고 있다. 그만한 각오가 없는 장애인은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집 밖에는 높은 턱과 형식적인 편의시설이 장애인들의 이동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집밖의 사회적 활동, 즉 교육권, 노동권, 정보 접근권 등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 권리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한국의 장애인들은 사회적 생명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을 위해 쇠사슬을 목에 감고 선로에 드러누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단순히 이동하는 데 편리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절규이다.
우리 이웃 중의 10% 이상이 바로 이러한 기본권을 제약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장애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요, 우리 부모와 형제, 자녀들이라는 점이다.
전체 장애인 중 중도에 장애인이 된 사람이 90% 이상이다.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등으로 해마다 10만명 이상이 장애인이 되고 있다. 특히 선천적 장애인도 알고 보면 환경오염과 음식오염에 따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체 장애인의 45%가 60세 이상이라는 통계는 장애인의 문제가 노인문제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장애인의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위험사회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원을 갖고 있으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모두 잠재적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제 장애인과 사회적 연관성을 문제삼아야 한다.
한편, 장애인들은 물적 조건보다 사회적 편견이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장애인이 우리와 다른 사람, 다른 욕구를 가진 특별한 집단으로 여겨지고 있고, 우리 모두가 장애인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은 인간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단지 불편한 부분을 가진 보통시민일 뿐인데 말이다. 
이렇듯 장애인은 사회적 원인으로 인해 발생했기 때문에 장애인 문제는 사회적 책임과 연관해서 논의해야 한다. 또한 이들이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장애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처럼 장애인 문제 발생의 원인을 생각해 볼 때, 장애인은 도와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향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회적 주체이다. 특히 우리 모두가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우리를 위해 위험사회로부터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 가야 한다. 장애인들이 또는 내가 인격적 주체로 자립하는데 방해가 되는 물적 조건이나 제도적인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사회는 장애인들이 장애를 입기 전과 같은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일할 수 있도록 불편한 부분을 해결해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장애인 복지의 목표인 정상화(normalization) 개념이다. 이러한 태도는 장애인의 문제를 장애인에 대한 보호가 아니라 위험사회로부터 우리를 지켜야 한다는 ‘권리의 복지학’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의미한다.
즉 장애인의 문제를 사회적 차원으로 지평을 확장해 우리와 우리의 이웃을 어떻게 위험사회로부터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고, 사회적 불편과 시선으로부터 시민적 권리를 형성하고 지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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