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대우 비정규직 현실 알아 달라”


인터뷰를 하기 위해 탑에 올라가겠다고 했더니 GM대우 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이 말렸다. 위험하다고, 힘들다고, 그냥 전화로 인터뷰해도 되지 않겠냐고. 그래도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9일째 혼자서 탑에서 농성하고 있는데 한번 올라갔다오는 것 못하겠냐며,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메고 4일 오후 3시경 30m 높이의 부평구청역 교통정보수집 카메라 탑 사다리에 올랐다. 아래에선 쉽게 오를 것 같아 보였는데, 막상 절반 정도 오르자 팔과 다리가 풀렸다. 잠시 쉬고 나서야 다시 기운을 차리고 오를 수 있었다.

겨우 농성장에 다다르자 박현상씨가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올라간 농성장은 너무나 좁고 추웠다. 지름이 1m정도밖에 안 되는 동그란 농성장은 다리를 펴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았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농성장은 흔들렸다. 흔들림으로 인한 어지러움을 좀 진정시키고 나서야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GM대우 비정규직지회 박현상(34) 조직부장과의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 30m 높이의 교통정보수집 카메라 탑에서 9일째 농성 중인 금속노조 GM대우 비정규직지회 박현상 조직부장. 비닐에 난 구멍 너머로 자동차들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벌써 9일째다. 힘들지 않나


= 처음 올라오고 1주일은 정말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다리를 쭉 펼 수도 없는 공간이라 몸을 구부리고 잠을 청해야 하기 때문에 잠들기도 힘들었다. 잠이 들었다 해도 바람이 불면 농성장이 심하게 흔들리기 때문에 밤에는 거의 잠을 못 잔다. 해가 어느 정도 뜬 아침이 돼서야 잠을 청할 수 있다. 지금은 그나마 요령이 생겨 익숙해져 괜찮다. 감기 기운이 약간 있는 정도를 빼고는 건강상태도 좋은 것 같다.

아래 천막농성장의 동지들이 음식과 신문·책 등을 올려주고 있고, 대·소변은 받아 아래로 내려 해결하고 있다. 처음에 소변은 모르겠는데 대변을 내려 보내기가 민망해 3일 동안 참았다. 그러나 급하면 어쩔 수 없다더니, 한번 처리하고 나서는 이제는 자연스럽게 해결하고 있다.

연말에 올라와 새해를 넘겼으니 사람들이 2년 동안 농성했다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3년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빨리 해결이 되는 게 우선이겠지만.


▶왜 고공농성을 벌이게 됐나

= 지난해 9월 비정규직노조 결성 이후 한 달 만에 조합원과 간부들에 대한 해고와 외주화가 잇따랐다. 이에 노조는 GM대우와 하청업체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아 천막농성도 벌이고 투쟁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회사의 모습에 언론과 좀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릴 투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내가 노조에 고공농성을 제안했고, 제안자인 내가 올라가겠다고 한 것이다.

노조 집행부야 장기간 투쟁을 해도 큰 문제는 없지만 조합원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집행부를 믿고 따라와 준 조합원들에게 빨리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는 마음도 컸다.

첫날 탑에 오를 때만 해도 이렇게 장기간 농성을 벌이게 될 줄은 몰랐다. 보통 다른 곳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면 당일 날 끌려내려 가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된 것이지만, 오랜 기간 농성을 하고 있으니 이제는 오기가 생겼다. 씻지를 못해 물티슈로 얼굴을 닦는 정도가 전부인데, 샤워시설만 있으면 지금 같아선 평생도 농성할 수 있을 것 같다.


▶30m 탑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 밤과 새벽에는 잠을 설치다가 아침에 겨우 잠이 들어 느지막하게 일어나 식사를 하고 낮 12시에는 아래 천막의 동지들과 함께 선전전을 진행한다. 책과 신문을 보다가 오후 6시 투쟁문화제를 함께 진행하고 찾아온 사람들과 인사를 하다보면 8~9시가 된다. 그리고 뉴스를 좀 보다가 일기를 쓰고 다시 잠을 청하는 일을 계속 반복하다보니 어느덧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왔다는 느낌보다는 또 하루가 왔다는 느낌정도였다. 언론보도를 접한 중·고등학교의 친구들에게서 전화가 와 “새해 인사를 뉴스로 하냐”는 말을 들었을 때는 2008년이 됐다는 느낌이 조금 들기는 했다.

▶GM대우나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GM대우는 21세기를 살면서도 전근대적인 노무관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노조에 폭력을 행사하고 조합원을 해고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제발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비정규직노조가 농성이나 점거 투쟁밖에 모르는 것은 절대 아니다. GM대우가 정당하게 법적으로 정해진 노조 활동을 보장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GM대우가 태도를 바꿔 대화에 나섰으면 좋겠다.

시민들이 겉으로 포장된 GM대우의 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과 처지를 알아줬으면 한다. 왜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고 이렇게까지 싸우고 있는지 이해해주고 지지의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


▲ 고공농성장에 둘러친 비닐의 구멍 사이로 바라본 GM대우 부평공장의 전경.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