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내가 가장 크게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 화장실 변기가 더러워진다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에 씻겨지는 변기가 더러워진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를 못했다기보다 결혼 전에는 변기가 더러워지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게 맞다. 변기가 그렇게 깨끗할 수 있었던 건 더러워질 만하면 손을 넣어 솔로 문질러 청소했던 엄마 덕분이었다는 걸, 나는 결혼하고서야 알았다.
어디 화장실 변기뿐이랴. 따뜻하고 익숙한 공기 속에서 편안히 쉬는 곳으로만 알았던 집안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일감의 전쟁터라는 걸 결혼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이를 낳으면서부터는 집안일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들었다. 걸레로 바닥을 훔치고 땀을 닦느라 허리를 펴면 어느 새 내 뒤로 어질러진 물건들, 아이가 쏟은 우유, 산더미처럼 쌓이는 빨래… 밥을 지어서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해야 했고 설거지가 끝나면 청소를 해야 했고 청소가 끝나면 또 밥을 차려야 했고 거짓말처럼, 누군가의 심술궂은 장난처럼 열심히 치웠는데도 등 뒤에는 똑같은 일이 뻔뻔스럽게 좍 벌어져 있었다.
화장실 벽도, 바닥도, 변기도, 세면대도 어김없이 때만 되면 닦아달라 대들었고, 계절이 바뀌면 옷장 속 옷가지도 달라져야 했고, 아이 안전사고의 절반은 집안사고였으니 눈을 떼면 안 됐고, 아이는 틈틈이 보채고 울었고, 엄마의 애정을 안아주기, 놀아주기, 자기만 쳐다보기로 확인하려 했고….
편안히 누워 책과 음악을 가까이하던 시간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책과 음악은 고사하고, 화장실 갈 틈도 사라졌다. “엄마 화장실 갔다 올게” 하면 아이는 울먹이며 두 팔을 벌린다. 나중에 저 아이는 기억할까. 자길 안고 화장실에 앉아있었다는 걸.
나는 기억하는가. 고된 수험생활이라며, 고된 사회생활이라며 집에선 푹 쉬라는 대접을 해주었던 나의 엄마를. 엄마는 옳지 못했다. 난 엄마를 기억하지 못했다. 푹 쉬어야 할 대접은 내가 아니라, 엄마가 받아야 할 몫이었다.
가사노동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은 하나도 없으면서, 그것 없이 나는 일주일도 살아내지 못했을 것이면서 서른 해를 넘기고 살아서 이제서야 집안일의 실체를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충격이었다.
요즈음 나는 새로운 생활 방식을 골똘히 모색 중이다. 일을 하면 휴식을 얻고, 사나흘이 지나면 뒤에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이 쌓이는 생활을. 집안 일은 한 집에 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면 전쟁의 피곤이 덜어질 것이고, 그게 옳다. 누가 가사노동을 여자가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쉬운 일이라고, 미숙련 노동이라고 말하는가.

 

심인숙(부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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