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살림만 하던 여성들이 모여 만든 극단

지난 주말 수봉공원 문화예술회관 소극장 무대. 사랑만큼 큰 질투와 시기, 죄책감으로 서로를 파멸로 몰고가는 자매 ‘블렌’과 ‘제인’의 팽팽한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연극 한편이 올려졌다.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 서로 도우면서도 경쟁할 수밖에 없는 자매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준 수작 헨리 파렐 원작의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는 블렌과 제인으로 분한 노정희씨와 곽은순씨, 그리고 바바라 역의 채혜숙씨, 에드윈을 분한 이정희씨의 눈부신 연기로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난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이 극을 공연한 이들은 인천주부극회 회원들이다. 주부극회라는 말 그대로 흔히들 ‘전업주부’, 다시 말해 집안 살림만 하던 여성들이 모여 만든 극단이다. 갈산2동에 위치한 인천여성문화회관(관장 조순일) 연극반이 주축이 되어 95년에 창단, 올해로 9년째를 맞으며 15회째 정기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실력 있는 극단이다. 여성들이 모인 극단인 만큼 지금까지 여성의 정체성과 가치를 다룬 여성극을 여러 차례 무대에 올렸다.
인천주부극회의 회원들은 집에서는 아이 키우고 집안 일을 돌보는 평범해 뵈기만 하는 가정주부이지만, 무대 위에 서면 눈빛부터 달라진다. 20대 젊은 시절 꿈으로만 간직했던 배우라는 꿈을 불혹의 나이에 이루고 있는 그들의 열정이 더해져 무대는 더욱 빛이 난다.
블렌 역을 맡은 노정희씨는 “학생 때부터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며 늦었지만 인천주부극회를 만나 젊은 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으로 여긴다고. 분열증과 알콜중독 증세를 보이는 신경질적인 제인 역을 맡은 곽은순씨는 무대에서는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어머니도 아닌, 제3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연극의 매력이라고 꼽는다.
무대에 직접 선 배우들 외에도 10여명의 단원들이 마음을 합쳐 공연을 만들어내기까지는 대표 채혜숙씨의 헌신이 한몫 한다. 이번 정기공연 연습기간에도 매일 같이 한보따리씩 반찬을 해다 나를 정도로 정성이 대단했다. 인형이며 작은 소품까지도 직접 염색하고 재봉해 만들었단다.
“주부이다 보니 집안 경조사를 빠질 수 없어 공연 당일 배우가 펑크나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모두들 연극을 사랑하는 마음, 무대 위에서 꿈을 펼칠 수 있다는 보람이 우리 극단을 이끌어 간다.”
채 대표의 말대로 인천주부극회는 결혼과 육아, 가사일로 자신의 꿈을 뒤로 미뤄뒀던 여성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특별한 만남이고 활동이다.
연극이 끝난 후 분장실에서 연출가 조정희씨의 가슴에 파묻혀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야 마는 배우들의 눈물에는 그 동안 자신이 흘려온 땀과 아쉬움, 더 없는 뿌듯함이 담겨 있었다. 그들이 흘린 눈물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가정이라는 문턱을 넘은 여성들의 용기와 열정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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