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앨리스>

‘하나와 앨리스’는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게 주인공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제목이다. 둘은 17세 소녀이고 같은 학교 단짝 친구들이다. 학교도 같이 가고, 발레도 같이 배우고, 맘에 드는 남자에 대한 비밀스런 마음을 같이 공유하는, 그런 친구다. 어느 날 하나(스즈키 안 분)는 앨리스(아오이 유우 분)가 점찍은 남자(미야모토)가 활동하고 있는 만담동아리에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는 문제가 시작된다.
미야모토를 미행(?)하던 하나는 책 읽는 것에 정신이 팔려 가게 셔터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진 그를 발견하고, 그가 의식이 혼미해져 있는 틈을 타 그가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렸고, 원래 자기는 그의 여자친구였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거짓말을 한 하나는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친구인 앨리스를 동원한다. 자신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이라 생각하는 미야모토는 자신의 기억을 살리기 위해 애쓰다가 앨리스를 좋아하게 된다.
그렇다. 사랑하게 돼 버린 것이 아니라, 좋아하게 돼 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17세 소녀들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그녀들이 좋아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녀들이 앞으로 잊게 될, 그리고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무의식에 늘 품고 갈 어떤 과거에 관한 이야기이다.
유난히 꽃이 많은 집에서 꽃 키우기를 즐기며 자란 하나는 어릴 적 그녀가 집에만 틀어 박혀 있던 아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고,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건 친구 앨리스라는 걸 잊는다. 앨리스는 툭 하면 연애를 시작했다 끝내는 철없는 엄마를 이해하는 듯하지만, 그녀가 정말 그리워하는 것은 부모와 보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고, 관둘까 말까 고민했던 발레를 할 때 그녀가 정말 아름다워 보인다는 걸 모른다.
영화 곳곳에, 소위 말하는 ‘소녀적 취향’들이 배치돼 있다. 그리고 그것이 참 예쁘다. 그러나 예쁘기만 한 것들 가운데에는 쿨해 보이고, 심지어는 맹해 보이기까지 한 여자아이들의 아픈 속내들이 숨어있다. 만년필 같은 아버지(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와 화분의 꽃이 갖는 외로운 아름다움, 슬픔을 감추며 남을 웃겨야 할 때, 소중한 걸 얻으려면 가져야 하는 아픔 같은 것들 말이다.
조금씩 여자로 성장하는 이 예쁜 소녀들에게 어쩌면 이 모든 아픔들을 죄다 기억해야 한다면 그건 형벌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미 여자로 성장한 나에게 소녀시절의 형상은 모두 애틋하고 아름다워 보이나 보다. 누구나 기억상실에 걸리는 것이다.

 

■ 필자 최경숙씨는 다음 카페 ‘우리영화를사랑하는인천사람들’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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