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체험·문화 프로그램과 예산 마련해야

오로지 대학 입시만을 위해 초등학교부터 획일적인 수험공부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시기가 바로 수능시험이 끝난 직후. 유일한 목표였던 수능시험이 끝나면 고3 수험생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들마저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이다.
“수능 이후 학교에 오가는 동안의 시간과 학교에 있는 시간이 별 차이가 없었다. 학교에서 그리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하러 학교에 가는지 잘 모르겠다. 담임선생님 얼굴을 봐서 나가기는 했지만 사실 아무 의욕도 나지 않았다.”
작년에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 1년을 보낸 김진희(20)씨는 지금 돌이켜 보면 수능 이후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게만 느껴진다고 말한다. 대학에 들어와 보니 다른 친구들도 수능 이후 대부분 진희씨처럼시간을 보냈단다.
물론 1993년 수능시험이 실시된 이래 수능 이후 고3 수험생을 위한 프로그램 부재는 매해 지적돼온 문제였다. 여론이 불거지자 교육인적자원부와 각 시도교육청에서도 매년 수능 이후 지침을 각 학교에 보내 지도·감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이런 지침에도 고3 교실의 수능 이후 풍경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고3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라는 지침만 있을 뿐 예산이 뒤따르지 않아 공염불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작년에 스포츠 댄스, 요리강좌 등 학생들이 재미있어할 프로그램을 계획했다가 돈이 없어 포기하고 무료강좌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밖에 없었다”며 “올해도 상황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게다가 수능이 끝난 뒤 고3 담임교사들은 진학지도를 위한 개별상담과 2학기 기말 준비 등으로 오히려 수능 전보다 업무가 늘어 학생들의 출석체크만 하기도 버겁다. 더욱이 이미 수시모집에 합격한 학생, 논술 등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 전문대를 준비하는 학생,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 등 학생들의 처지가 워낙 다양해 일괄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 고등학교의 교무부장은 “길게는 12년, 짧게는 3년간 공부한 실력을 단 하루만에 심판 받아야 하는 교육현실이 지속되는 한 수능 이후 청소년들이 겪게 되는 정신적 공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많은 학생들이 합격이 확정될 때까지는 불안정한 상태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 적응과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하더라도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 대학입시제도가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셈이다.
그러나 교육의 근본적 변화만 바라보고 여전히 공황상태로 방치돼 있는 수능 이후 고3교실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현재 제도 안에서 고3학생들이 고교시절의 마지막을 의미 없이 보내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할 것이다.
인천시교육청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수능 이후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장학지도를 강화하고 불시 점검을 하겠다고 각 학교에 공지한 상태다. 그러나 철저한 지도와 감시보다 더욱 시급한 것은 개별 학교의 상황에 맞고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 보급과 그것을 시행할 수 있는 예산책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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