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말 ① 프리다 칼로의 ‘부서진 기둥’

▲ 부서진 기둥(1944. 돌로레스 올매도 박물관 소장).

사막을 배경으로 한 여자가 온몸에 못이 박힌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느 신전의 기둥이 그녀의 척추를 대신하고 있지만 그 마저도 산산이 부서져있다. 사막은 쩍쩍 갈라져있고, 그녀는 의료용 코르셋에 의지해 몸을 간신히 세우고 있다. 잔혹한 상황 속에서 그녀의 표정은 외려 담담하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치열한 자기응시의 힘. 그녀의 자화상이 특별한 이유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 장애를 갖게 된 소녀는 자라서 멕시코에서 가장 입학하기 어려운 국립 예비학교에서 공부한다. 기쁨도 잠시, 하교 중 그녀가 탄 버스와 전철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 버스 손잡이 역할을 하던 쇠기둥이 그녀의 몸을 관통했다.

쇄골ㆍ척추ㆍ갈비뼈ㆍ골반이 골절됐고, 왼쪽 어깨와 오른쪽 다리가 탈골됐다. 왼쪽 다리는 열한 조각이 났다. 사고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그녀의 이름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평화를 뜻하는 ‘프리다’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고통으로부터 단 한순간도 평화롭지 못했다.

퍼즐조각처럼 부서진 뼈를 맞추는 수술만 서른 두 번. 온몸을 깁스한 채 아홉 달을 견뎌야했던 그녀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끔찍한 고통을 잊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팔을 제외하고는 꼼짝할 수 없었던 그녀는 침대 위에 이젤을 놓고 천장에 거울을 달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기적처럼 걸을 수 있게 된 프리다는 스물한 살 때 멕시코 벽화미술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를 찾아가 자신이 화가로서 자질이 있는지, 자신의 그림을 평가해달라고 한다.

디에고에겐 어처구니없는 요청이었지만, 운명이었는지 거절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승낙한다. 그녀의 자화상을 본 디에고는 기본기는 없지만 묘한 에너지가 뿜어 나오는 그녀의 그림에 경도된다. 스물한 살의 나이 차, 두 번의 이혼과 바람기로 잠잠할 틈 없는 디에고는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결혼 초기에 프리다는 화가의 아내로 살았다. 하지만 금세 다시 시작된 디에고의 여성편력은 지칠 줄 몰랐고, 상처받은 프리다는 외로워진다. 그가 그럴수록 그에 대한 집착은 강해졌고, 그 집착은 아이를 갖는 걸로 연결됐지만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세 번의 유산 끝에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고, 철제 코르셋 없이는 몸을 세울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결정적으로, 디에고는 프리다의 여동생과 바람을 피워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교통사고는 그녀의 몸을 짓이겼고, 디에고는 그녀의 마음을 난도질했다. 그리고 운명은 그녀 앞에 캔버스를 가져다 놓았다. 더 힘들게, 더 아프게 자신을 사지로 몰아가며 몸속에 남은 한 방울의 피라도 더 짜내 캔버스에 옮기려했다. 그런 고통 속에서 태어난 작품이 ‘부서진 기둥’이다. “나는 혼자일 때가 많았고 가장 잘 아는 주제가 나였기 때문에 나를 그린다”

그녀의 자화상을 마주하고 있으면 마치 깜깜한 무대 위에 그녀와 내가 단둘이 서있고 핀 조명이 우리 둘만 비추고 있는 것 같다.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에게 동정심은 값이 싸고, 위로는 어설프다. 그녀가 나를 응시한다. 눈물을 흘리는 채로 마음을 숨기지도, 포장하지도, 피하지도 않는다.

겹겹이 찐득하게 내 얼굴에 달라붙어있는 가면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나도 비로소 가면을 벗는다. 그렇게 서로 응시하면서 깨닫는 게 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주는 게 예술이고 감동이고 그 누군가에는 강력한 힘이 되는 것임을.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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