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은실 문학평론가

▲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그거 피해망상이야”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적은 월급을 받는다고 문제 제기할 때, 여성이 가사노동을 도맡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말할 때, 또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에 불쾌감을 표할 때 종종 듣는 말이다. ‘피해망상’은 여성이 가부장 사회의 성차별을 문제 제기할 때, 실제 현실은 차별적이지 않다는 말과 함께 발화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피해망상’일까? 2018년 3월 20일 기준 OECD가 발표한 남녀 임금 격차 지표를 보면, 한국은 36.7%로 OECD 국가 중 1위다.(주-1). 또, 같은 일시 OECD가 발표한 유급/무급 노동(가사, 돌봄 노동)에 하루 동안 할애하는 남녀 간 시간차 지표를 보면, 여성이 무급 노동을 하는 시간은 227.3분으로 남성의 무급 노동 45분에 비해 약 5배 높다.(주-2)

이러한 지표는 노동 현장에서 젠더 불평등이 수치(數値)로 증명되는, 목격 가능한 현실임을 보여준다. 만약 망상이 있다면 차라리 이러한 현실이 평등하다는 생각일 것이다.

또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것에 망상을 적용하는 편이 낫겠다. 최근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것에 남성 팬들이 불쾌감을 표시하며 아이린의 사진을 태우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말인즉 ‘(굿즈 구입 등으로)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 네가 나를 배신할 수 있느냐’, ‘페미니즘을 하다니 제대로 뒤통수 맞았다. 그동안 조신한 척은 다 하더니’라는 식이다.

그러나 아이린은 그들이 상상해온 ‘페미니즘 않는 조신한 여성’과 일치하는 사람일 이유가 없다. 그들은 아이린에게 가부장적 시선에서 종용되는 여성상을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좌절되자 실망을 넘어 분노했는데 이는 그들 머릿속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해왔기에 가능한 반응이다.

또, 이러한 분노 표출은 아이린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한 것도 아님에도 페미니즘과 관련한 움직임에 대한 공격적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페미니즘을 하는 여성으로부터 자신들이 누려왔던 당연한 가부장적 질서가 해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지하고 위협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확히 말해 이를 ‘망상’으로 두둔할 수는 없다. 젠더 문제와 관련해 ‘피해망상’의 용례는 정신병리학 차원의 문제보다는 정치적인 것,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가부장 이데올로기에 제동을 가하는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수단으로 피해망상을 말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피해망상이라는 백래시는 ‘사실’로 증명 가능한 사회 문제를 개인의 예민함이나 망상으로 취급함으로써 타인을 억압하려는 행위다. 이러한 백래시는 수전 팔루디가 『백래시』에서 말하듯, 젠더 문제가 더 이상 여성의 피해망상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일종의 가능성을 가진 싸움이라는 점을 반증한다. 여성의 문제제기는 더 이상 피해망상이 아니다.

(주-1) Gender wage gap (https://data.oecd.org/earnwage/gender-wage-gap.htm), 참조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189500

(주-2) Emplyment: time spent in paid and unpaid work, by sex (https://stats.oecd.org/index.aspx?queryid=54757)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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