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지 청년광장 회원
내 첫 직장은 프랜차이즈 피자가게였다. 출근하면 테이블과 바닥, 창문을 닦고 손님이 오면 주문을 받고 피자가 나오면 서빙을 하고 손님이 나가면 테이블을 정리한다. 샐러드를 채우고, 설거지 된 그릇이 나오면 마른 수건으로 닦고 테이블을 세팅한다. 점심시간에는 이 모든 일을 거의 동시에 해야 한다. 앉을 수 있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알바생은 점심을 2시부터 교대로 먹는다.
한 달간은 ‘내가 돈이라는 걸 버는 구나’ 하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울컥하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계단 밑 조그만 공간이었다. 한여름에는 땀이 줄줄 흐르고, 한겨울엔 손이 동상 걸릴 것 같은 창고 같은 그 방은 알바생들의 로커룸과 샐러드바를 채우는 미니주방 겸용이었다.
유니폼을 갈아입는 알바생이 문을 안 잠갔든, 잠갔든 샐러드바를 채워야하는 알바생과 마주치게 돼있었다. 그 조그만 공간에서 서로 얼굴을 붉혀야하는 일은 그 가게 알바생의 지위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유니폼을 편하게 갈아입을 곳도, 점심 먹고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눌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 존재 같았다.
그때 시급이 4110원. 하루 6시간 일하면 2만 4660원, 주5일 한 달 일하면 49만 3200원을 벌었다. 손목이 시리도록 피자를 들으면서 이건 내가 오늘 하루 동안 벌어도 못 사먹는 피자네, 하며 씁쓸해했다.
그 뒤로도 나는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 여러 알바를 했다. 피시방ㆍ식당ㆍ술집 등 업종은 달랐어도 힘든 것은 비슷했다. 그때 난 최저임금이라는 걸 몰랐다. 주휴수당? 당연히 몰랐다. 그러면서도 내가 일하는 대가를 다 받는다고 생각했고, 주는 대로 받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요즘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사회가 떠들썩하다. 내가 처음 알바를 했을 때 4110원이었는데, 조금씩 오르다가 올해는 작년보다 1060원 오른 7530원이다.
작년에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이 활발했다. 모든 대선 후보자가 1만원을 이야기했다. 알바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등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 사장님도 그랬다. 어떤 때는 최저임금 1만원을 이야기하는 내가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해 속상했다.
가게 사정으로 최저임금을 못주겠다고 하는 편의점 사장님이 있었다. 일을 그만 두고 노동청에 진정서를 넣었다. 진정서를 쓰면서 나에게 친절했던 사장님이 아닌데도, 몇 십만 원짜리 전기세 고지서를 본 것이 맘에 걸렸다. 하지만 편의점은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야간수당을 받지 못했고 주휴수당으로 10만원 정도 받았을 뿐이었다.
최저임금은 최저인생 같다. 딱 그만큼에 맞춰 살아야할 것 같은 단어에서 주는 느낌이 우울하기도 하다. 우리의 노동은 최저임금 만큼인 걸까. 몇 년간 최저임금만큼 오르지도 못한 우리의 노동조건은 누가 걱정해줄까.
과로사와 과로로 인한 자살이 사회문제가 되는 시대, 갑질과 비정규직이 만연한 시대에 우리의 현실은 최저임금 논쟁에서 벗어나 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최저임금제도. 일하고 받는 돈을 넘어서 ‘노동과 인간다운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하는 시간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