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ㆍ(사)자치와공동체 공동기획 강좌‘시민 주도 지역공동체 만들기’4강,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

<편집자 주>‘촛불혁명’이후 시민들의 주도성이 높아지고 있고, 6월 지방선거와 개헌을 앞두고 직접민주주의를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개헌과 관련해‘국민 헌법’이 주창되는 가운데 지방분권과 주민자치도 주요 화두다.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실질적 주민자치를 실현할 수 있고,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할까?‘마을 만들기’로 표현된 지역공동체 만들기에 힘써온 이들의 고민거리다. 주민들과 어떻게 만나고, 함께 어떤 활동을 펼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함께 풀어가기 위해 강좌를 마련했다. 강좌는 2월 27일 1강을 시작해 4월 3일 6강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인천사회복지회관 1층 소강당에서 진행한다.

3월 20일 열린 4강은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이 맡았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재개발에서 주거권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빈민운동 등을 하던 사회운동가들이 현장과 연결된 연구소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만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 도시 재개발 문제를 연구해왔다.

이원호 연구원은“도시적인 삶에서 배제된 사람들에 초점을 두는 것, 여러 요인으로 차별받지 않는 도시가 모두를 위한 도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강의 내용을 요약ㆍ정리한 것이다.

노숙 방지 벤치와 양극화

▲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이‘모두를 위한 도시 만들기-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먼저 사진 몇 장을 함께 보자. 서울시 중구 한국은행 본점 앞 공원 벤치는 앉기 불편하게 만들어놓았다. 중구 순화동 문화공원 벤치에도 팔걸이를 많이 설치해놓았다. 모두 노숙 방지 벤치다. 영국과 중국에도 노숙을 못하게 바닥에 스파이크(못 모양의 구조물) 등을 설치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도시 공간에서 양극화가 극명히 드러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과 타워팰리스는 동일한 시간,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데 계층 분리를 명확히 보여준다.

오늘 강의 제목이 ‘모두를 위한 도시 만들기’다. 우리나라 ‘도시화’율은 2015년 기준으로 82.5%다. 여기서 도시화율은 면적이 아닌 전체 인구수 대비 도시에 살고 있는 인구의 비율을 말한다. 도시화라는 건 도시적인(urban) 삶 자체를 의미한다. 도시 만들기나 도시운동을 얘기할 때 ‘군’과 ‘면’을 뺀 ‘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 시스템과 분위기가 도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모두를 위한 도시 만들기’에서 ‘모두’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모두’의 초점을 어디에 두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정책 수립자 중에는 ‘모두’를 보편성에 초점을 두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이 많아, 그 정책에서 소외되는 이들이 생기는 경우가 자주 있다. 앞서 사진으로 본 노숙 방지 벤치 역시 공공의 공간에서 노숙인이라는 사회소외계층을 배제하는 정책이다. 그렇게 한들 노숙인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므로, 차라리 그 돈으로 소외계층을 돕는 데 사용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즉, 여기서 ‘모두’는 도시 공간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소외란 결국 공동체에서 특정 계층을 배제하는 것이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는 ‘대문이 딸린 주택지’를 뜻하는데, 공원이나 도로도 사유이고, 외부인의 출입은 경비원에 의해 통제된다. 공동체이지만 외부와 단절된 모습, 즉 양면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도 그렇다. 외부인 접근을 차단한다. 도시의 특정 공간이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끼리끼리 분리한다.

위기의 도시와 3대 민생 위협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위기를 느끼고 있다. 2016년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발생 후 시민들이 그 스크린도어에 수많은 포스트잇을 붙였는데, ‘너의 잘못이 아니다. 나는 너다’라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하청과 재하청,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같은 처지로 내몰려 살아가고 있다.

또, 그해 5월 강남 서초동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그때 인상적인 포스트잇 글귀가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였다. ‘그곳에 내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메시지로 전달됐다. 내가 잘못해서 당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일상생활 공간에서 소외와 배제, 차별이 자행되며 누구든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함께 공분하고 문제제기하는 과정도 따랐다. 권력관계로 인해 도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위기가 만연한 시대를 살고 있고, 이에 맞서려는 시도 역시 이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환경오염과 생태 위기는 자본주의로 녹색을 덧칠해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회적 타살’ 사건이다. 보도되지 않은 사건도 많다. 일용직 노동자, 노인, 장애인 가족 등이 경제적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다. 유서에 남긴 ‘미안하다’는 메시지는 한국에 빈곤경계령을 울리고 있다. 사회복지시스템을 촘촘히 짠다며 ‘그물망 복지’라고 부르는데, 한국은 빈곤의 벼랑 끝에서 떨어지면 회복이 불가능한 낭떠러지 사회다.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크게 느끼는 고통은 교육, 의료, 주거 문제에서 비롯한다. 이를 ‘도시 3대 민생 위협’이라 부른다. 1990년대 프랑스에서는 출산율 저하 문제를 대하며 ‘출산파업’, ‘민족자살담론’ 등을 얘기했는데,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이 소외되는 현상이 민족자살로 이어지고 있고,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3대 민생 위협은 출산을 포기하게 만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의료 공공성 확보, 교육 정상화 운동 등을 벌였지만, 주거 운동은 많이 하지 않았다. 주거를 권리로 얘기해온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고, 주거권이 철거민이나 노숙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 주거권 문제를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도시’의 이론적 배경

▲ 인천투데이과 (사)자치와공동체가 공동 기획한 강좌 ‘시민 주도 지역공동체 만들기 방행 모색’네 번째 강의가 3월 20일 열렸다

‘모두를 위한 도시’의 이론적 배경은 ‘도시에 대한 권리’다. 1960년대 프랑스 도시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이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또한, ‘68혁명’의 주요 슬로건이 도시에 대한 권리이기도 했다.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는 항상 소외를 생산하고, 자본주의화 된 도시는 소외된 민중들이 가라앉아 있는 공간이며, 또한 펼쳐지지 않은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도시는 소외와 가능성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 가능성의 공간을 우리(=소외된 민중)의 공간으로 만들자는 현실 투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다양하다. 먼저 도시는 공공재로서 모두 함께 사용하고 발전시켜야한다. 이를 ‘작품으로서 도시에 대한 권리’라 말한다. 또한 민중의 필요에 따라 사용하고 전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를 전유권이라 한다. 참여권도 있다. 도시 공간을 생산·재생산하는 데 민중이 중심적인 역할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는 권리다. 또, 도시는 이질적 요소들이 결합한 공간이므로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차이에 대한 권리라 한다. 도시 중심부에 대한 권리도 있다. 공간 분리로 인해 소외계층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데, 이들이 다시 중심으로 돌아올 권리를 의미한다.

유엔 해비타트와 ‘지속가능한 도시’

해비타트라는 유엔 공식 기구가 있는데 주거와 도시에 관한 세계회의를 20년마다 연다. 1차 회의에선 ‘모두를 위한 적정한 주거’가 핵심 키워드였다. 전 지구적 도시화율이 37%였고, 도시는 ‘가능성이 없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2차 회의 의제는 ‘적절한 주거와 환경적 지속가능성’이었는데 핵심은 주거권이었다. 주거권을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는데, 제3세계와 시민사회는 주거권을 공식 명칭으로 넣어야한다고 주장했다.

3차 회의는 2016년 10월 에콰도르 키토에서 열렸다. 의제는 ‘지속가능성과 모두를 위한 도시’였다. 핵심 키워드는 도시에 대한 권리, 즉 도시권이다.

도시 면적은 전 세계 면적의 2%인데 반해, 전 지구적인 도시화율이 54.5%가 넘으면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도시에서 우리는 어떻게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을 것인가 하는 대안을 모색하는 장이었다.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합의하기 위해 ‘모두를 위한 도시’를 이야기한 것이다.

‘도시는 공공재이다’라는 표현을 공식 문서에 넣었는데, 이게 의미가 크다. 도시는 모두가 이용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도시권의 원칙 세 가지도 확인했다. 자원 분배에 있어서 공간 정의, 의사결정에 시민참여 보장, 사회 경제 문화적 다양성 존중이 그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없었다. 각국이 주거권이나 도시에 대한 권리를 쟁점으로 격론을 벌일 때 한국은 향후 20년간 도시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국제 합의에서 ‘스마트시티 수출’에만 관심이 많았다. 도시 마케팅에만 치중했다는 것이다. 당시 국토교통부 차관은 기획재정부에서 예산을 낮게 배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향후 20년간 도시 비전을 결정하는 자리에서도 도시를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기업 전략 차원에서 생각했다.

유엔 합의문에 도시권을 명시하면 이를 이행해야 하는 책임이 생긴다. 굉장히 실천적이고 혁명적인 슬로건이고, 이를 이행해야하는 책임으로 인식해 선진국 다수가 도시권 명시를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유엔 합의문의 강제력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다.

도시적인 삶에서 배제된 사람들에 초점 둬야

▲ 공유와 정의의 도시 만들기 사례‘경의선 공유지 자치구 운동’.

현 정부가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을 보면, 주택 공급 확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비전을 제시했다. 주택 공급 확대, 민간 임대 시장 통제, 취약계층 주거복지 강화로 요약된다. 그러나 주택 공급의 확대 즉, 도시 청년과 중산층의 주거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만 초점을 두고, 그 이외 문제들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앞서 말했듯이 도시적인 삶에서 배제된 사람들에 초점을 두는 것, 여러 요인으로 차별받지 않는 도시가 ‘모두를 위한 도시’의 핵심이다. ‘모두’를 ‘보편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중산층 위주의 주거정책을 편다. 이런 방식으로 정책을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배제하지 않는 쪽에 초점을 두는 게 중요하다.

공유와 정의의 도시를 만들어가기 위한 실천 사례를 보면, 영국에서 노숙 방지 벤치를 설치하자 시민들이 ‘비인간적이고 잔혹하고 수치스럽다’며 이불과 쿠션 등으로 벤치를 꾸몄고, 팔걸이를 없애자는 온라인 청원 운동을 벌였다. 이 청원에 1만 9500여명이 참여해, 결국 팔걸이를 없앴다.

우리나라에선 ‘경의선 공유지 자치구 운동’을 꼽을 수 있다. 마포구가 공유지에서 영업 중인 푸드트럭을 내쫓은 걸 시민단체들이 규탄하고, 공유지의 가치와 공공적 역할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곳에서 세미나, 전시회, 공연 등을 열고 있다. 위기의 도시 속에서 새로운 도시공간이 가능하다는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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