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식과 명망을 갖춘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인천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애써 마련한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안)이 무용지물이 됐다. 지난 15일 열린 시의회 기획행정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 박영애 의원이 동구 3인 선거구 2개를 2인 선거구 3개로, 서구 4인 선거구 2개와 남구 4인 선거구 1개를 각각 2인 선거구 4개와 2개로 나누는 수정안을 발의했고, 이 수정안은 가결됐다.

중선거구제 도입 취지를 살려 3~4인 선거구를 늘릴 것을 요구해온 시민단체들과 군소정당은 강력하게 항의하며 본회의에서 원래대로 바로잡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16일 열린 시의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박승희 의원은 한 술 더 떠 그나마 단 한 개 남아있던 서구 4인 선거구마저 2인 선거구 2개로 쪼개는 수정안을 발의했고, 이 수정안은 가결됐다. 출석 의원 26명 가운데 자유한국당 의원 15명 전원이 찬성한 결과다. 2014년 지방선거 때는 4인 선거구가 3곳 있었는데, 이번엔 쪼갤 수 있는 선거구는 모조리 쪼갰다.

수정안을 발의한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쪽에서 ‘4인 선거구를 나눠야한다는 강력한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라 했고, 그것으론 설득력이 없어 보였는지 ‘여러 의견을 듣고 인구수 등을 검토해 선거구 획정(안)을 수정ㆍ보완한 것’이라고 애써 덧붙였다.

‘강력한 의견’의 주체가 해당 지역구에서 기초의원선거에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려는 자들과 의석을 더 차지하려는 자유한국당이라는 걸, 수정안을 발의한 의원이 총대를 멨을 뿐이라는 걸 관심 있는 시민이라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시의회의 의결을 되돌릴 순 없다. 의결에 따라 6.13 지방선거에서 인천 기초의원 선거는 4인 선거구 한 곳 없이 2인 선거구 24곳, 3인 선거구 18곳으로 치러진다. 정당 지지도 고공행진을 보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서 3인 선거구에 후보 2명을 공천한다는 이야기도 들려, 이번에도 거대 양당의 의석 독식이 우려된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거대 양당이 인천에서 차지한 기초의회 의석은 총101석 중 97%나 됐다. 양당이 합친 정당 지지율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의석을 차지한 것으로, 의회가 다양한 주민의견을 대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촛불혁명의 정신은 적폐청산과 정치개혁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보인 이번 행태는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횡포다.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은 조례로 돼있고, 조례 제ㆍ개정 권한은 시의회에 있다. 시민들이 의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이지만, 시민들이 개입할 틈이 없다. 횡포를 똑똑히 기억해 선거에서 심판하는 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잊지 않고 행동하는 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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