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소금이 인기다. 요 근래 문화재청은 소금과 관련한, 기대에 없던 두 가지 조치를 연이어 내놓아 세인들로부터 주목할 만한 시선을 받았다. 뜻밖의 결정을 접하며 ‘그렇다면 인천은?’이란 질문을 스스로 했다.

두 개의 조치 중 하나는, ‘제염(製鹽)’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예고다. 제염은 소금을 만드는 방식이다. 무형문화재의 대상이 된 것은 바닷물을 끓여 만드는 자염법(煮鹽法)과 염전(鹽田)을 활용하는 천일제염법(天日製鹽法)이다. 서로 다른 방식의 소금 생산 기술을 ‘제염’으로 묶어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에 새로 등록하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한 달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까지 거치고 나면 지정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또 하나는, 전남 신안군 일대 염전 시설물의 등록문화재 지정이다. 작년 말에 등록이 끝났다. 증도의 태평염전과 비금도의 대동염전은 염전 전체가 문화재가 됐다. ‘활용하면서 보존하고, 보존하면서 활용한다’는 등록문화재의 취지에 소금 생산 시설이 결합됐다는 것도 눈여겨 볼 일이지만,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염전의 ‘인문적 경관’이 강조됐다는 사실이다.

문화재청은 이 염전들에 대해, 역사성과 함께 시설물의 독특한 모습을 언급했고, 한편으로는 먼 데서 바라볼 때 시야에 들어오는 ‘인문적 경관’을 문화재의 가치로 인정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인 것이 현재도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 ‘삶의 현장’이라는 점이다.

역사를 갖고 있고, 사람들이 여전히 이용하고 있으며, 자연 등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문화재의 가치 기준이 된 사례다. 이것을 통틀어 짧게 표현한다면 ‘인문적 가치’라고 말할 수 있다.

소금은 인천에서 두드러진 ‘인문적 가치’를 보여준다. 이미 소금에 대한 언급은 비류의 설화에서 ‘습하고 물이 짜다’고 은유적으로 나타난 이래, 조선시대에는 오랫동안 인천의 특산물로 언급됐고, 190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 조성으로 전환기를 맞이했다. 주안에 설치된 천일염전은 남동염전ㆍ군자염전ㆍ소래염전으로 확대되면서 거대한 염전지대를 형성했고, 그곳이 공장지대로 바뀌며 새로운 산업문화의 현장으로 변화해갔다. 소금꽃으로 비유되는 노동자들의 땀방울이 인천만큼 역사ㆍ문화적 의미를 갖는 곳도 드물다.

인천에는 이외에도 크고 작은 염전들이 곳곳에 운영돼 가히 ‘염의 도시’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던 지역이다. 육지뿐만 아니라 섬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백령도는 조선시대부터 소금을 생산하던 섬으로 전해오기도 하는데, 천일염을 생산하던 화동염전은 백령도의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철도는 어떤가. 전국 생산량의 절반을 웃도는 소금 생산량은 수인선을 건설하게 만들었고, 철도 주변에는 부수적인 산업 시설들은 물론 시장이 만들어지고, 집들이 생기고, 길이 생겼다. 산을 넘던 샛고개는 소금장수들의 이야기로 덮였다. 염부들도 여전히 남길 말이 많다.

타지에서 볼 수 있는 소금밭의 경관을 지금 인천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천은 오히려 다른 지역들과 차별화된 소소한 경관과 이야기를 갖고 있다. 소금박물관 하나 없이 염전의 대부분이 사라진 게 아쉽긴 하지만, 소금이 남긴 인천의 인문적 가치를 드러낼 만한 대상들은 차고 넘친다. ‘인천의 소금’은 ‘짠물’의 멍에를 벗고 문화유산으로 거듭날 때가 됐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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