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ㆍ(사)자치와공동체 공동기획 강좌‘시민 주도 지역공동체 만들기’ 방향 모색3강,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편집자 주>‘촛불혁명’이후 시민들의 주도성이 높아지고 있고, 6월 지방선거와 개헌을 앞두고 직접민주주의를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개헌과 관련해 ‘국민 헌법’이 주창되는 가운데 지방분권과 주민자치도 주요 화두다.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실질적 주민자치를 실현할 수 있고,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할까?

‘마을 만들기’로 표현된 지역공동체 만들기에 힘써온 이들의 고민거리다. 주민들과 어떻게 만나고, 함께 어떤 활동을 펼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함께 풀어가기 위해 강좌를 마련했다. 강좌는 2월 27일 1강을 시작해 4월 3일 6강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인천사회복지회관 1층 소강당에서 진행한다.

지난 13일 열린 3강은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맡았다. 양 교수는 “인천이 외국 자본이나 국내 대기업을 유치하는 식으로 지역 경제를 살리려 해도 인천 안에서 다른 파급효과를 거의 만들지 못하고, 지역 주민들을 고용하거나 재투자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천 경제의 뿌리 깊은 문제”라며 지역 순환형 경제 정책으로 눈을 돌려야한다고 지적했다. 강의 내용을 요약ㆍ정리했다.

사후 비판 아닌, 대안 모색해야

▲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인천에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있다. 인천에서 경제문제가 터질 때 문제의 본질을 밝히는 활동도 한다. 하지만 인천에 어떠한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는 대안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일이 발생한 뒤에 진단하는 정도에 그치고,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회민주주의 정당이라 할 수 있는 일본 공산당이 중심으로 벌이는 일본 주민운동, 즉 주민공동체 단위의 운동은 지역 경제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지역공동체 차원의 대안적 경제시스템을 모색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주민운동이나 시민운동은 문제가 터지고 나서 원인을 진단하는 형식에 집중돼있다. 인천에 지역 순환형 경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거나 시정부가 외부 자본 투자 유치에만 매몰돼있다는 식의 사후 비판이 아니라, 새로운 지역 경제시스템을 모색하는 논의를 해보고 싶다.

토목공사 중심 투자, 지속·안전성 없어

경제 성장은 ‘투자’로 이뤄진다. 일반 기업이나 사회적경제 조직(=마을기업ㆍ사회적기업ㆍ협동조합 등) 등이 공장이나 사무실을 만들고, 자재를 구입하고, 신기술을 도입하는 등, 투자가 이뤄져야 경제가 성장한다.

투자를 무엇이 견인하는가가 중요하다. 인천의 투자는 주로 토목공사가 이끈다. 남동ㆍ주안공단 등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인재를 고용하는 등의 생산적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투자가 지역 경제에 안정적으로 기여하려면 민간소비 촉진과 산업 주체인 기업 간 원재료ㆍ부품 교환 등으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말이다.

토목공사는 지속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도시 인프라는 한번 건설하면 100년 이상 지속한다. 또한 토목공사는 경기에 따라 탄력적으로 변하고 안정적이지 않다. 지방재정 여건을 볼 때도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토목공사에 지속해 투자할 수 없다. 지역 경제를 추동하는 투자가 생산적이지 않은 것이 인천의 문제다.

외부 투자 유치로 지역경제 살릴 수 없어

다음으로 투자가 지역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외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페인 몬드라곤은 여러 협동조합이 생산 부문별로 카르텔을 이루고 있다. 자동차 기업이 유리 기업에서 유리를 조달하고, 유리 기업은 유리 만드는 기계를 생산하는 기업에서 기계를 조달한다. 이것이 생산적 투자방식이다. 영국 셰필드, 일본 가나자와ㆍ요코하마 등의 예시도 있다. 이러한 예시들은 투자의 동력ㆍ주체가 지역 내부에 있다. 그러나 인천을 보면, 투자의 동력이 외부에서 들어온다. 이로 인해 연쇄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

민선 5기 송영길 시정부가 환영했던 A기업 유치를 보자. 시정부는 이것으로 지역 순환형 경제를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A기업은 송 전 시장이 환영할 만한 기업이 아니었다. A기업은 외국인투자(이하 외투) 법인의 자회사 격일 뿐이다. 예를 들어, 신세계 복합쇼핑몰 입점을 두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맺은 양해각서(MOU)를 보면 외투 법인이 서명했다. 이 외투 법인이 모회사고, 신세계 복합쇼핑몰은 자회사 격이다. 신세계 복합쇼핑몰은 행정ㆍ재정 지원과 세금 감면 등을 받는 등 상전 대접을 받지만, 지역에서 벌어들인 모든 부가가치를 모회사에 갖다 바쳐야한다.

<타임지>가 인천 송도를 ‘Tax Heaven: 조세 피난처’ 20곳 중 하나로 선정할 정도로 시정부는 파격적인 세금 감면을 해줬다. 그러나 인천경제청은 A기업이 외투 법인의 자회사 격인지도 몰랐다. A기업 뒤에는 경기도 일산에 주소를 두고 있는 외투 법인이 있다. 이 외투 법인은 페이퍼 컴퍼니다. A기업이 엄청난 돈을 벌지만, 그게 남동공단 물류 기업이나 주안공단 관련 산업 기업에 재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모회사로 유출된다.

A기업은 인천의 다른 기업들과 상호작용을 전혀 하지 않는다. 첨단기업은 기술이 중요하기에 자신들의 기술을 지역 기업들과 공유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인천이 외부 자본을 유치하는 식으로 지역경제를 살리려 해도 인천 안에서 다른 파급효과를 거의 만들지 못하고, 지역 주민들을 고용하거나 재투자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천 경제의 뿌리 깊은 문제다.

시정부 대대로 ‘외부 자본 유치 만능론’ 빠져

이처럼 파행적인 경제시스템이 악순환하고 있다. 외투 법인들이 인천지역 기업으로부터 원자재나 부품 등을 조달하는 비율이 9%에 불과하다. 외국과 국내 다른 지역에서 조달한다. 영종이 그나마 비율이 높다는데, 21% 정도다. 외투 법인이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면 지역 내 조달 비율이 60~70%는 돼야한다. 신세계가 인천 서구에 국내 최대 복합쇼핑몰을 만들면 지역 내 조달 비율을 50% 이상으로 하고 지역 인력을 고용한다고 했지만, 그 결과는 뻔하다. 어차피 모든 권한은 모회사 격인 외투 법인에 있고, 이익을 지역에 재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지역의 성장 동력을 외부에서 찾는 패러다임을 ‘외부 자본(기업) 유치 만능론’이라고 한다. 안상수ㆍ송영길ㆍ유정복 시정부 모두 여기에 빠졌다. 안상수전 시장은 주로 외국 자본과 외국 연구개발(R&D)센터를 유치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송영길 전 시장은 국내 대기업에까지 눈을 돌려 이러한 패러다임의 지평을 넓혔다. 두 시정부가 밝은 경로를 유정복 시장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외부 자본 유치 만능론이 지역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또한 시정부는 ‘경제자유구역 만능론’에 빠져있는데, 이는 지역 경제 몰이해가 만들었다. 시정부 상당 부분의 재정과 인재는 인천경제청에 집중돼있다. 경제자유구역만 잘되면 지역 경제가 잘 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지역 순환형 경제 모델, 일본 사카에

▲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그런데 인천의 진보적인 시민들은 경제자유구역에 무지했다. 인천의 시민운동은 지역경제와 관련해 사후적 문제의식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대안을 모색해보지 않았다. 공부하지 않은 것이다. 진보 정당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들과 지방의원들이 복지는 잘 알았어도 지역 경제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다른 사회운동에 쏟는 만큼의 에너지를 지역경제에 대해서도 배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인천의 시민운동은 어떤 방향을 잡고 대안을 찾아야하는가? 그 대안을 외국 사례에서 모색해보자.

일본 나가노현에 인구 2만명 정도의 사카에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여기에 가려면 도쿄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나가노현으로 들어가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나가노현의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는 비어있는데 사카에로 가는 버스는 매번 만석이다. 승객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세계 주요 도시의 진보적 주민운동가들, 진보정당의 지역정치인들이 이 작은 도시를 찾는 것이다. 사카에가 지역 순환형 경제의 가장 모범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경제는 생산과 소비로 양분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소비는 개인 차원뿐 아니라 기업 간 상호연결도 포함한다. 사카에에서는 지역에서 생산된 모든 것이 지역에서 거의 다 소화된다.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재고가 없다. 그러므로 생산자들은 지역 주민을 100% 고용한다. 지역의 다른 생산자들한테서 원재료와 부품, 부동산을 구매해 조달하고, 이렇게 생산한 제품들은 거의 다 지역에서 소비된다. 이 순환의 전 과정을 주민들이 통제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주민자치가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장 모범적 사례다.

지역 순환형 경제의 추동력은 의식화된 주민

사카에는 1970년대까지 일본 ‘외부 자본 유치 만능론’의 전형이었다. 외부 대형 유통업체를 유치하는 식으로 지역 경제를 자극하려했다. 인천 시정부처럼 성장 동력을 외부에서 찾았다. 외부 자본을 유치하면 지역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실패하자, 지역 주민들은 외부 자본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막연하게 느꼈다. 여기서 일본 공산당 민주청년회(민청) 회원들이 막연한 문제의식을 과학화하고 객관화하는 운동을 펼쳤다.

대규모 쇼핑몰 등이 들어와도 지역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고, 향토기업으로부터 원자재나 부품을 조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데이터화하고 알기 쉬운 문체로 풀어쓴 소책자를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 돌리고, 교육하려고 노력했다.

그곳을 방문했을 때 술집에서 우연하게 110세 할머니를 봤는데, 그 할머니는 ‘사카에 옆에 있는 아오키초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 도시가 멍청하게도 복합쇼핑몰을 유치한다더라. 여기에 모든 행정ㆍ재정적 지원을 쏟아 붓고 있더라. 우리가 30년 전에 이미 얻은 교훈을 모르고 있더라’ 하는 식으로 얘기했다. 사카에에선 외부 자본 유치 만능론을 실증적이고 객관적으로 반박하는 교육을 주민들에게 체계적으로 했다. 민청 회원들이 지역 대학과 공동 연구해 지역의 모든 조직ㆍ개인에게 교육하는 사업을 10년 이상 해왔다.

그리고 지역 주민 80% 이상의 공동출자로 생산자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전통목공예ㆍ농업ㆍ임업ㆍ견직물 생산자들과 다양한 서비스업자들이 참여했다.

공동출자한 사람들은 외부 자본유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모든 생산물과 서비스업을 협동조합에서 전량 매입한다. 협동조합이 개입하기 전에 이뤄지는 교환이나 매매는 내버려두지만, 일정 기간에 모든 생산물을 매입해 지역 안에 있는 개인 소비자나 기업들에 배분한다. 배분한 뒤에도 물량이 남으면, 인근 다른 도시에 공급하는데 그게 10% 정도 된다.

사카에가 하고 있는 지역 순환형 경제의 토대는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육된, 의식화된 주민들이다. 이들을 열정적으로 교육하는 운동가들의 역할도 중요했다.

자발적 주민공동체에서 상상하고 실천하자

글로벌화 되는 과정에서 지역경제가 피폐해졌다. 밑에서부터 살려야한다. 인천의 경제를 살려야한다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서부터 선순환 시스템을 학습하고 교육하고, 실천해야한다. 이는 정치이념을 떠나 자기 순환형 메커니즘을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한번 상상해보자. 남동구 만수동에서 생산되는 모든 생산물과 서비스를 지역 안에서 소비하는 지역 순환형 경제시스템을 만들기로 한 의식화된 주민조직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일괄 매입해 필요한 소비자에게 배분한다.

여기다 만수동 내 기업 간 선순환 거래를 결합해주는 역할을 협동조합이 했더니, 만수동에서 생산된 모든 생산물과 서비스가 100이라고 했을 때 소화된 것은 70, 다른 도시에 공급한 것은 10, 재고는 20이다. 재고 20은 지방자치단체가 공공 사회서비스용으로 매입한다. 그리고 지역화폐를 발행해 지역 저소득층과 노년층 등에게 나눠줘 이를 매입하게 한다.

이러면 지자체는 ‘20’만으로 제대로 된 사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지역 선순환 경제를 구축하는 데 지방재정 약간을 지출, 지출의 유효성을 높일 수 있다. 세계적으로 20개가 넘는 곳에서 이러한 실험이 펼쳐지고 있다.

시장에 의해서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자본주의적 경제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원리의 경제를 작은 공간 단위에서 실천할 수 있다. 그러려면 자발적 주민공동체가 있어야하고, 그 마을만의 경제 청사진을 제시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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