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희 극작가

▲ 고동희 극작가

하루하루가 놀랍도록 새롭다. 얼음장 밑으로 조심스레 다가오는 봄소식이면 기꺼이 반길 일이기도 하겠으나, 날이 바뀔 때마다 쏟아지는 힘겨운 고백들이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직 여성 검사가 어렵게 용기를 내 자신이 겪은 힘겨운 일을 세상에 드러낸 이후 곳곳에서 나오는 고백들이 줄을 잇는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고은 시인을 시작으로 연극계의 거장으로 추앙받던 이윤택, 오태석, 윤호진 연출가 등의 ‘괴물’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피해 여성들의 힘겨운 고백으로 문화예술계 각 분야에서 또 다른 괴물들이 속속 드러났고, 심지어 종교계까지 번져갔다. 학계와 체육계, 의료계에서도 괴물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가히 괴물들의 천국이다.

이전에도 그런 고백, 아니 신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는’ 흔한 일쯤으로 여겨 유야무야되기 일쑤였다. 정치권이나 고위 관료들, 그리고 기업의 고위층이 보여준 추악한 일들이 종종 거론됐으나 단편적 사건으로 시간 속에 묻히는 일이 허다했다.

이토록 많은 괴물들이 그동안 숨어있거나 가려져있었던 것은 괴물들이 지닌 거대한 권력 때문인데, 그래서 더욱 사악한 괴물들이다. 배역을 미끼로, 훈련을 이유로, 논문을 볼모로, 급기야 먹고사는 생존을 위협하며 더러운 수작을 벌여온 괴물들의 실상이 하나 둘 벗겨지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고백으로 실체가 들통 난 괴물들의 변명도 괴물스럽다.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거나 줄행랑을 놓거나 잠적하는 게 우선이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서는 기억이 안 난다는 게 고작이고, 또 다른 폭로가 이어진 다음에야 내 생각과는 다르지만 피해자가 그렇다니 인정한다고 어물쩍거린다.

그 중에서도 이윤택 연출가가 보여준, 리허설까지 마친 ‘잘 연출된 기자회견’은 괴물의 실체 그 자체다. 피해자를 향한 사과를 앞세웠지만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에 등장하는 괴물들도 똑같은 과정을 보인다. 진실한 반성 없이 겨우 고개를 숙이는 사과로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고, 더더욱 피해자들이 입은 큰 상처를 조금이라도 보듬을 수조차 없다.

최근 한 달여 동안 마주하게 된 괴물들은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수십 년 동안이나 괴물로 살아온 것들이 이제 겨우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아울러 드러나지 않은 괴물들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마주하는 괴물들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정리할 일이 아니다. 번져가는 ‘미투’와 ‘위드유’ 속에서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법과 나아가 괴물로 성장하는 과정을 없애는 사회적 동참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상처를 드러내는 데 큰 용기를 내야했던 피해자에게 고백으로 인한 상처를 다시 안겨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 우선이다. 성별과 나이, 인종이나 종교, 직급이나 직책을 내세워 약자를 차별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고 인격체로서 존중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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