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ㆍ(사)자치와공동체 공동기획 강좌시민 주도 지역공동체 만들기 방향 모색1강>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강의

<편집자 주> ‘촛불혁명’ 이후 시민들의 주도성이 높아지고 있고, 6월 지방선거와 개헌을 앞두고 직접민주주의를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개헌과 관련해 ‘국민 헌법’이 주창되는 가운데 지방분권과 주민자치도 주요 화두다.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실질적 주민자치를 실현할 수 있고,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할까? ‘마을 만들기’로 표현된 지역공동체 만들기에 힘써온 이들의 고민거리다. 주민들과 어떻게 만나고, 함께 어떤 활동을 펼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함께 풀어가기 위해 강좌를 마련했다. 강좌는 2월 27일 1강을 시작으로 4월 3일 6강까지, 매주 화요일 오후 인천사회복지회관 1층 소강당에서 진행한다.

인천지역 시민단체 상근활동가를 비롯해 주민자치에 관심 있는 시민 40여명이 참가한 1강을 곽현근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맡았다. 곽 교수는 주민자치 활동 사례를 들어가며 지방분권과 주민자치의 정확한 개념, 주민자치의 실질적 방식 등을 ‘풀뿌리민주주의를 위한 읍ㆍ면ㆍ동 주민자치의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다. 강의 내용을 요약ㆍ정리했다.

▲ 곽현근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주민자치는 자원봉사가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동네 사회적 자본’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뒀다. 동네 주민 간 관계가 중요하다는 주제를 가지고 연구해왔다. 당시만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주민의 관심사가 됐다. 현 세대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해 무게중심을 다음 세대에 뒀다. ‘제도적 자산’에 대한 관점이 바로 서야 다음 세대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우리나라는 수십 년간 읍ㆍ면ㆍ동에 관심이 없었다. 읍ㆍ면ㆍ동의 제도를 하나하나 나눠서 생각하면 파편화돼, 그림을 전체적으로 그릴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인 주민자치는 어떤 모습일지 그리는 중이다.

제도를 만들고 그에 걸맞은 용어를 쓸 때, 좀 더 명확하게 용어의 의미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주민자치는 봉사가 아니라, 지방민주주의에 관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주민투표와 국민발안 같은 직접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결사체민주주의, 풀뿌리민주주의 등 다양한 민주주의가 있다. 주민들끼리의 논의가 먼저 작용하고, 정부는 일단 배제돼야한다.

주민들만의 그 공간을 ‘민초의 공간’으로 정의했다. 민초의 공간이 광범위하게 만들어진 것은 촛불집회다. 이에 반해 정부가 주민을 초대한 각종 위원회나 간담회, 공청회 등을 ‘초대된 공간’이라 정의했다. 요즘 ‘초대된 공간’이 자주 만들어진다. 초대된 공간의 대표적 예로 주민참여예산제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주민들은 제도를 만들고 예산을 짜는 것이 서투르기에,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고, 제도의 각 요소를 참여자가 알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읍ㆍ면ㆍ동 단위 주민자치위원회를 만든다고 풀뿌리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제도가 유기적으로 작동되게 노력해야한다. 주민자치는 자원봉사가 아니다. 풀뿌리민주주의를 아래까지 연계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시행착오도 많을 것이므로 서로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지방자치의 원칙 두 가지

‘지방자치’라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모두 쉽게 이해한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접근할 땐 다르다. 지방자치는 풀뿌리민주주의와 연계해 생각해야한다. 지방자치를 잘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재정권과 입법권을 생각할 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에 주로 초점을 두는데, 이는 지방분권이다.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이 현 정부의 전략에도 들어가 있다. 지방자치의 첫 번째 원칙은 지방분권이다.

한 가지 원칙이 더 있다. 많은 권한이 지방에 내려오면 그 권한을 누가 가질 것인가? 제대로 된 지방자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 원칙을 생각해야한다. 어느 정도의 권한과 책임이 지방정부로 내려와야 가능하지만, 지방정부의 주인은 ‘주민’이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지방분권과 주민의 지방정부 운영(주민자치), 이렇게 두 가지가 엄격하게 지켜져야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일본이 지방자치를 시행하면서 용어를 정할 때 ‘지방분권’과 ‘지방민주주의’를 각각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로 바꿨다. 우리나라는 교과서를 만들 때 이를 따라 했다. 단체자치는 지방분권이고, 주민자치는 지방민주주의다. ‘자치’ 앞에 있는 ‘단체’가 자치의 주체라는 뜻이 아니다. 권한이 내려와야 지방자치인데, 내려온 그 권한의 주인이 누구냐의 문제가 지방민주주의이다. 지방자치단체 즉, 지방정부의 주인은 주민이라는 것이다. 주민의 뜻에 따라 지방정부를 운영하는 것이 지방민주주의다.

이 원칙에 따라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잘 되고 있는가? 투표로 당선자를 만들고, 당선자는 주민의 의사를 받고, 4년 임기로 어느 정도 통제하는 대의민주제를 시행하고 있다. 지방자치를 어느 정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에서 주민자치 원리의 문제점은 ‘민주성 결핍’이다. 또한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다. 주민에 의한 운영 원칙이 가능하다면, 방식은 많을 수 있다. 선거제도를 얘기해보자. 마음에 들지 않는 현행 선거제도를 바꾼다면 민주성 결핍이 해결될 수 있을까? 선진국에서도 선거 이후 정치인들은 주민의 통제력 밖에서 마음껏 활보한다. 따라서 엘리트 정치에 대항하는 대안적 민주주의를 생각해야한다.

고리 원전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이렇게 전문성을 요구하는 사안을 결정하는 데 왜 무작위로 뽑힌 주민에게 맡기는가? 이는 전문성 문제가 아니다. 현 세대 비용의 가치, 미래 세대의 안전 가치, 둘 간의 대립 문제다. 이것을 왜 원자력 전문가에게 맡기는가. 이러한 가치판단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람에게 맡겨야한다. 무작위로 뽑는 이유는, 한국의 인구 비율에 맞게 뽑힌 집단이 실질적으로 한국 국민의 평균적 생각을 대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정된 것은 그대로 정책에 반영하는 위정자의 자세도 중요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국회가 제대로 일을 했으면, 이러한 숙의는 필요하지도 않다.

‘자치분권’이라는 말도 지금 사전에 없다. 사실 이것은 ‘지방자치’다. 지방자치라는 용어를 왜 자치분권으로 바꿨는지 모르겠다. 지방분권과 지방민주주의의 의미를 엄격히 구분해야하고, 직접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 제도 등 여러 방안을 동시에 작동해야 지방민주주의는 가능하다.

▲ 인천투데이과 (사)자치와공동체가 공동주최한 강좌 ‘시민 주도 지역공동체 만들기 방향 모색’ 1강이 곽현근 대전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의 강의로 2월 27일 오후 인천사회복지회관 1층 소강당에서 진행됐다.

풀뿌리민주주의와 ‘사회적 자본’

풀뿌리는 서로 얽혀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줄기는 약해보이지만 땅 밑에서 얽힌 뿌리로 인해 ‘우리’는 강하고 서로 보호해줄 수 있다. 개개인은 서로 관계를 맺고 연결돼있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신뢰와 유대가 생긴다. 주민 사이에 형성된 신뢰와 규범(호혜)의 네트워크는 ‘사회적 자본’이라 부를 수 있다.

사회학과 정치학에서 얘기하는 사회적 자본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 정치학자 퍼트남은 ‘Making Democracy Work’의 방법으로 사회적 자본을 이야기했다. 퍼트남이 이야기한 사회적 자본은 신뢰, 호혜(단기적 이타심과 장기적 이기심), 네트워크다. 한 동네의 개개인이 서로 잘 알고 관계를 잘 맺고 있다면 사회적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갈등을 쉽게 중재하고 대안을 효율적으로 찾아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스스로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정치학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적 자본은 동네ㆍ도시 수준의 단위 안에서 주민ㆍ시민의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지역공동체’는 사회적 자본의 사촌개념이다. 지역공동체는 ‘일정한 지역에 살면서 살고 있는 장소와 사람들에 대해 사회적ㆍ심리적 유대를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ㆍ심리적 유대가 ‘사회적 자본’을 의미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본을 투자할 때, 이 자본은 자녀의 건강ㆍ지식ㆍ기술ㆍ경험으로 변화한다. 이것들은 인적 자본이다. 인적 자본은 개인의 영역에 해당한다.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에는 인적 자본도 중요하고 사회적 자본도 중요하다.

그런데 지역공동체 담론의 핵심은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의 유형을 결속ㆍ가교ㆍ연계로 분류할 수 있다. 집단 안에서는 결속이 강하지만, 이질적인 두 집단이 부딪힐 때 가교가 필요하다. 두 집단 사이의 약하지만 유의미한 유대감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포용적 네트워크를 형성해야한다. 진보와 보수 단체가 서로 만나지 않고, 각자의 세계가 서로 공유되지 않는다면 양극단을 달리게 될 것이다.

인천 서구 가좌2동 사례는 가교적 사회적 자본이라 할 수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에 진보적 인사가 영입되면서 서로 부딪치고 여러 갈등이 생기고 봉합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공권력, 권한을 가진 사람, 집단과의 연계적 사회적 자본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개입하거나 권력이 집중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민초의 공간’과 ‘초대된 공간’

손님을 초대했을 때, 그를 기쁘게 해줘야하는 것은 주인이다. 그런데 정부가 주민대표를 초대했을 때 주민대표는 재미가 별로 없다. 그래서 가고 싶지 않다. 정부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수당을 준다. 수당뿐 아니라 여러 의미를 부여해 주민을 끌어들여야한다. 그러나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편한 사람, 지역 유지 등을 주민대표라고 자리에 앉힌다. 이러면 밑에서 의견을 취합해 위에 제시할 수 없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민초의 공간’에서만 투쟁했고, ‘초대된 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초대된 공간’이 열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열린 공간, 거버넌스를 어떻게 재밌게 만들 것인가이다. 아래에서 주민이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야한다. 또한 ‘초대된 공간’에는 ‘민초의 공간’에서 활동한 사람이 올라가야 한다. 현장에서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를 하려면 민초의 공간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고,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내야하고, 이렇게 해야 풀뿌리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수직적으로 계층화돼있는 정부는 효율적이다. 반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수평적 동료의 세계다. 만약 정부가 주민자치위원회나 시민단체를 조직하면 정부의 말단 조직처럼 수직적 계층화가 이뤄질 것이다. 수평적 동료의 세계를 지켜야하는 사람들과 관료 세계에서 온 사람들은 대화하기 힘들다.

‘사회적 자본’ 키워야 민관 협치도 가능

풀뿌리 단계에서 ‘의사를 조직’해 중앙정치에 영향을 미쳐야한다. ‘의사를 조직’한다는 것은 자발적 참여와 조직화로 지역 의제를 발굴하고 해결한다는 뜻이다. 또한,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정부가 초대한 공간에 참여해 지역 의사를 수직적으로 전달하는 것 역시 중요하게 여겨야한다.

‘민초의 공간’ 규모에 따라 ‘사회적 자본’의 유형이 달라질 수 있다. 풀뿌리민주주의를 애기할 때는 공간의 규모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 규모이냐에 따라 주민 간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작을수록 결속이 원활하고, 이질적일수록 중재자가 필요하다.

마을은 동네보다 공동체적 성격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다. ‘마을 만들기’는 동네를 공동체로 만든다는 뜻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읍ㆍ면ㆍ동 인구는 이미 2만명을 넘었다. 동 단위가 너무 크다. 동 하나가 외국에서는 도시 하나에 맞먹는 규모다. 따라서 동 대표는 본인이 관할하는 지역을 여러 권역으로 나눠 결속적ㆍ가교적 사회적 자본을 키울 필요가 있다. 결속과 가교는 서로 분리되는 개념이 아니다. 이질적 부분을 활용하면 가교, 동질적 부분을 활용하면 결속이라 할 수 있다.

민초의 공간에서 의견을 형성하는 과정에 결속ㆍ가교적 ‘사회적 자본’을 활용한다. 이렇게 형성한 의견을 초대된 공간에서 지방정부와 만나 공유한다. 주민자치위원회는 중앙정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 또는 단체와는 달리, 읍ㆍ면ㆍ동 기능 전환에 따라 주민자치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연하게 생겼다. 그래서 위에 구속되지 않기에 아래로부터 체질 개선이 그나마 가능하다.

‘주민→주민 조직화(네트워크 형성)→주민자치위원회’라는 생태계 모형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마을 단위에서 활동 경험이 있는 주민이 주민자치위원회에 들어가야 한다.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에 풀뿌리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게 하려면, 정부와 관계를 생각하기 이전에 ‘마을 만들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마을과 마을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스스로 정당성을 확보해야한다. 그 다음에 읍ㆍ면ㆍ동 행정과 만남으로써 민관 협치를 모색해야한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중앙부처의 마을 만들기 예산을 끌어내려 주민 관점에서 풀어내야한다. 주민이 동 단위에서 재량권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게 읍ㆍ면ㆍ동 기능을 강화해야한다. 아울러 ‘중간 지원 조직’이 정부의 하위조직처럼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데, 좀 더 주민에 가깝게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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