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정치입문부터 2018년 별세하기까지...

최기선 전 인천시장은 1945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서울 보성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정치 입문은 1979년 신민당 김영삼 총재 공보비서관 직을 맡으면서 부터다. 1984년 민추협(민주화추진협의회) 대변인과 1985년 신한민주당 부대변인 등으로 활동하며 정치경력을 키웠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에 출마해 당선됐다. 1992년 재선을 노렸지만 낙선했다.

최 전 시장은 부패한 정치를 거부했다. 김영삼 총재는 이런 그를 신뢰했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인 1993년 3월 그를 관선 인천시장으로 임명했다. 인천과 인연이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이듬해 9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북구청 세무비리 사건이 터지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1995년 6월 실시된 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인천시장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최 전 시장은, 1998년 재선에 성공했다.

약 9년 동안 인천을 이끌어온 최 전 시장은 많은 업적을 남겼다.

송도정보화도시(Tele port), 인천국제공항(Air port), 인천항(Sea port)을 개발·발전시키는 인천 트라이포트(Tri-port) 전략은 그가 가장 공들여 추진한 사업이다. 이 전략이 결국 인천을 오늘날 국내 제3도시로 성장 시키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이다.

부정 편·입학과 내부 분규 등으로 분쟁에 휩싸였던 선인학원을 시립화했고, 인천 도시철도 1호선 건설도 그의 공이다. 당시 경기도 땅이던 강화·옹진·검단을 인천에 편입시켜 시세를 키웠다.

한편 그는 2002년 3억원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대우그룹 본사 유치와 관련한 송도 부지 용도변경 추진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그러나 2005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명예를 회복했다.

최 전 시장은 2006년 5월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인천시장 후보로 출마하며 재기를 노렸으나 실패했다. 암 투병중이던 2016년 출판기념회를 열며 오랫만에 대중 앞에 섰으나, 이미 깊어진 병색으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유족으로 베로니카 김 여사와 장남 강수, 차남 강국 씨가 있다.

▲ 인천경제자유구역 지정 전 1998년 9월 송도신도시 건설현장에서 최기선 전 인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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