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기예르모 델 토로|2018년 개봉

 

엘라이저(샐리 호킨스)가 청소부로 일하는 미국 항공우주센터 비밀 실험실에 괴생물체가 반입된다. 직립보행을 하고 인간과 비슷한 신체를 지녔으나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는 낯선 생물체를 실험 대상 혹은 위험한 존재로 간주하는 항공우주센터 사람들과 달리, 엘라이저는 수중생물에게 괜히 마음이 쓰인다. 점심으로 싸온 삶은 계란을 건네며 교감을 시도하는 엘라이저. 미지의 생물체 역시 마음을 열고, 둘은 수어와 눈빛으로 대화한다.

전류가 흐르는 곤봉으로 괴생물체를 제압하며 항공우주센터까지 옮겨온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괴생물체를 빨리 죽여 해부하려하고, 생물체가 엘라이저와 교감하는 모습을 목격한 연구 책임자 호프스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틸버그)는 어떻게든 생물체를 살리려 애쓴다. 결국 해부하기로 결정이 내려지자, 엘라이저는 유일한 친구이자 이웃인 자일스(리처드 젠킨스)의 도움을 받아 괴생물체를 탈출시키기로 한다. 절친한 청소부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와 우연히 탈출 계획을 알게 된 호프스테틀러 박사도 탈출을 돕는다.

엘라이저는 천애고아로 자란 장애인이다. 강가에 버려진 채 발견됐다는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목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커다란 흉터가 남아 있고, 말을 하지 못한다. 엘라이저의 친구는 직장 동료 젤다와 이웃집 화가 자일스뿐이다. 젤다는 흑인여성이고 자일스는 게이다. 항공우주센터의 백인남성 직원들은 엘라이저와 젤다를 자기들 똥오줌이나 치우는 존재로 생각하고, 직장에서 해고당한 자일스는 친근감을 표했던 파이가게 백인남성에게 쫓겨난다. 1960년대 미국에서 장애여성, 흑인여성, 성소수자인 그들은 인간 아닌 존재로 취급 받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항공우주센터에 반입된 낯선 생명체에게 인간 아닌 존재로 취급받던 그들이 일종의 동류의식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엘라이저에게 그는 특별했다.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없는 ‘결핍’의 존재가 아니라, 엘라이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첫 생명체였으니. 낯설다는 이유로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지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결핍의 존재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모습으로 소통하던 두 생명체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운명이다. 젤다와 자일스가 그 특별한 사랑을 돕는 것 역시 어쩌면 필연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셰이프 오브 워터’는 어둡지만 아름다운 화면의 판타지물을 만들어온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동화 같은 판타지영화다. 그렇다고 현실과 동떨어져 허무맹랑한 상상력만으로 채워진 영화는 아니다. 외려 미국과 소련 간 우주전쟁이 한창이던 냉정시기인 1960년대 미국이라는 배경은 당시 첨예하게 드러났던 여성차별, 인종차별, 성소수자차별을 낱낱이 드러내며 현재를 비추고, 그 안에서 그려지는 판타지는 현실의 모순을 효과적으로 풍자한다.

낯선 생명체를 죽이려하는 스트릭랜드는 신의 형상 그대로 빚은 인간 외의 존재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가 생각하는 신의 형상은 자신과 같은 백인남성이다. 흑인은 자신과 비슷하긴 했지만 못 미치는 존재고, 장애여성은 색다르기에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비늘 덮인 몸으로 수중생활을 하는 낯선 생명체는 언제 죽여도 상관없는, 미국의 우주전쟁에 도움이 될 실험 재료로나 취급하는 게지.

백인 주류사회에서 성공의 상징인 캐딜락, 그 중에서도 희귀 아이템인 청록색 캐딜락을 타야 직성이 풀리는 스트릭랜드. 자신의 차 색깔이 녹색이 아니라 청록색이라고 단호히 구별하고야 마는 그의 모습은 지금 우리사회를 뒤덮고 있는 ‘혐오’와 ‘배제’가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는 짓인지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특정 색깔, 형태, 양식 밖의 존재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멸시하는 것이 혐오 아니던가.

혐오와 배제에 대항하는 것은 사랑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엘라이저와 낯선 생명체의 사랑. 흑인여성, 늙은 게이, 그리고 미국과 소련 양쪽에서 팽 당한 과학자의 지지와 연대.

영화의 제목이 ‘셰이프 오브 워터’ 즉 ‘물의 형태’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물에는 형태가 없다. 우리가 형태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물을 담고 있는 틀일 뿐. 진리처럼 떠받드는 정상성 역시 인간이 만든 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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