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20)

나뭇잎 사이로는 시민기자들의 환경이야기를 격주로 싣습니다.

‘알래스카에 냉장고를 팔 수 있을까?’ ‘에이, 못 팔지. 집 안팎이 다 냉장고인 셈인데 필요하겠어?’ ‘아냐, 팔 수도 있어. 티브이 광고 봐봐. 첨단기능이 추가된 최신 냉장고를 가진 삶이 성공한 삶이라는 메시지를 주잖아. 마케팅만 잘하면 필요 없는 물건도 얼마든지 팔 수 있어’

얼마 전 냉장고 앞에서 혼자 한 생각이다. ‘우리 집도 알래스카처럼 냉장고가 필요 없는 게 아닐까?’ 퇴근길에 사온 우유를 냉장고에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낮에는 보일러를 돌리지 않는 거실이 알래스카나 시베리아만큼 춥지 않을까 싶었다.

며칠째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가 이어져 모스크바보다 기온이 낮은 서울이 ‘서베리아(서울+시베리아)’라 불릴 때였다. 냉장고 안이나 밖이나 별 차이 없을 것 같아서 우유를 식탁 위에 두었다. 6일 동안 식탁 위에 두고 하루 한 잔씩 마신 우유는 100ml를 다 마실 때까지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식품들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찾아본 책이 ‘사람의 부엌-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서(류지현, 낮은산, 2017)’다. 네덜란드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냉장고 없이 식품을 보관하는 비법을 찾아 여러 나라의 부엌을 돌아본 이야기가 주로 실려 있다.

이 책은 다양한 환경에서 거두어온 식재료들을 일정한 온도의 냉장고에 몰아넣는 현대의 식품 보관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보통 냉장고의 온도는 1도에서 4도인데 토마토ㆍ애호박ㆍ토란 등은 10도 이하에서, 가지ㆍ오이ㆍ강낭콩은 7도 이하에서 저온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겨울을 날 수 있는 배추나 양배추는 냉장고에서 견딜 수 있지만 원산지가 인도인 가지에게 냉장고는 너무 추운 환경이다. 남미에서 온 고구마는 13도 이하에서는 색과 맛이 변하는데 고구마가 감기에 걸리는 셈이라고. 감자는 눈에 띄는 변화는 없을지 몰라도 4도 이하에서는 탄수화물 성분이 당분으로 바뀐다고 한다.

생감자와 냉동감자를 각각 튀겼을 때 맛이 다른 이유는 이 때문이란다. 감자나 생강, 당근 등 뿌리채소는 모래 속에 보관하면 수분 유지도 적절히 돼 무르지도 마르지도 않게 오래 보관할 수 있단다.

달걀도 굳이 냉장 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식품이라고 한다. 다만 닭이 알을 낳을 때 달걀 껍데기에 남길 수 있는 살모넬라균이 걱정인데, 달걀을 만진 뒤에는 손을 깨끗이 씻고 달걀을 익혀 먹으면 문제없다. 그동안 나는 시원하니까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혹은 냉장고 안에 달걀 넣는 칸이 만들어져 있으니까 별 고민 없이 냉장고에 넣었더랬다. 새로 사온 달걀 10개는 뒤 베란다로 나가는 문 앞 서늘한 선반에 용기째 올려뒀다.

나는 장을 조금씩 자주 보는 편이다. 대형마트와 시장이 가까이 있어서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음식은 만들어 바로바로 먹는 것이 맛있다고 생각해 한 끼 넉넉히 먹을 만큼만 조리한다. 고기나 생선, 냉동식품을 한꺼번에 많이 사서 냉동실에 보관하지 않는다. 이렇게 장보기 습관을 점검해보니 냉장고 없이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남편에게 냉장고를 없애볼까, 물어보았다. “그럴까? 어차피 오래 돼서 제 기능을 못하는 것 같기도 한데. 요샌 냉장실 안보다 밖이 더 시원한 것 같아” 남편은 찬 음식이 들어가면 바로 반응하는 위와 장을 가졌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시원한 맥주는커녕 찬물도 마시지 않는다.

냉장고에 보관했던 과일도 한나절쯤 실온에 두어서 냉기가 가시면 먹는다. 그러니 남편에게도 냉장고는 없애 볼까 싶은 물건이다. 20년도 더 된 GOLDSTAR(금성) 육각수냉장고를 완전히 떠나보낼지, 김치나 아이스크림을 보관할 작은 냉장고로 바꿀지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김정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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