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공동정범

김일란·이혁상 감독|2018년 개봉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는 물대포와 헬기를 앞세워 철거민들이 농성하던 용산 남일당 옥상의 망루를 진압한다. 농성을 시작한 지 단 하루만에, 어떤 대화도 협상도 없이 들이닥친 강제진압이었다. 진압 과정에서 망루에 불이 붙었고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이제는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은 용산 참사. 그저 과거에 있었던 사고였을까? 용산 참사 9주기를 맞은 2018년 1월, 여전히 9년 전 참사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다큐멘터리로 극장을 찾았다. 2012년 ‘두 개의 문’으로 용산 참사의 진실을 날카롭게 파헤쳤던 연분홍치마가 다시 용산 참사 다큐멘터리 ‘공동정범’을 세상에 내놓은 것.

2009년 1월 20일 용산 남일당 망루에는 용산의 철거민만 있지 않았다. 서울 상도동ㆍ신계동, 성남 단대동 등에서 온 같은 처지의 철거민들이 ‘연대’하기 위해 함께 망루에 올랐다. 그날 새벽 진압으로 망루에 있던 이들은 죽거나 살아남아 ‘범죄자’가 됐다. 대한민국 검찰과 법원은 용산 참사 화재의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지도 않았음에도, 경찰뿐 아니라 철거민도 다섯 명이나 죽었음에도, 살아남은 철거민들에게 모든 죄를 떠넘겨버렸다.

남일당에 아시바를 쌓아 망루를 지을 때만 해도 농성 25시간 만에 경찰특공대에 의해 진압되리라고는, 용산 철거민들도 다른 지역에서 온 철거민들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준비 없이 쫓겨 오르고 오른 곳이 망루 꼭대기였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이 치솟았고, 최루가스에 질식할 것 같았고, 망루의 얇은 벽을 무섭게 때리는 물대포 소리에 아무 소리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저 이러다 죽겠다 싶어 본능적으로 뛰어내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들의 몸은 만신창이가 돼있었고, 아버지가, 이웃이, 동지가 죽었다. 경찰도 한 명 죽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확한 사인 대신 사고 공간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공동정범’으로 기소됐다.

영화 ‘공동정범’은 국가폭력으로 가족과 동료를 잃고도 범죄자가 돼 감옥살이를 해야 했던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다. 전작인 ‘두 개의 문’이 참사 당일의 영상기록과 재판기록으로 사건을 파헤쳤던 것과 달리 이번 공동정범의 카메라는 당시 사건 자체보다는 4년 남짓한 구속 수감생활을 마친 뒤 세상에 나온 이들의 현재를 클로즈업한다.

형을 살고 나온 이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아버지를, 동지를 뒤에 두고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억울하게 상상하지도 못한 참사의 범죄자가 됐다는 원망, 이 억울함과 답답함을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서운함….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은 복잡한 감정들과 뒤섞이고 ‘용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 찾기는 그들에게 또 다른 고통의 여정이 된다.

전작 ‘두 개의 문’이 진압한 경찰의 입장에서 그날의 진실을 찾기 위한 퍼즐 맞추기였다면, ‘공동정범’은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기억을 통과하며 공동정범 다섯 명의 감정을 오롯이 직면하게 한다. 국가폭력 희생자라면 이럴 것이다, 혹은 이래야한다는 규범을 뛰어넘는 주인공들의 감정 드러내기는 명확하게만 보였던 피해자ㆍ가해자의 구분을 흐릿하게 만들고 선명한 과제였던 ‘진상규명’에 의문부호를 남긴다.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당혹스러움이야말로 용산 참사가 왜 참사인지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남일당 망루에 있던 개인들의 상처를 외면한 채 국가폭력을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국가폭력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놓쳐버린 나약한 개인들의 상처를 집요할 정도로 파고든 이 영화는, 비록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치부일지라도 피해자 개인의 트라우마를 솔직히 드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상규명이 시작된다는 것을, 참사의 진짜 가해자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공동정범’은 끝나지 않은 용산 참사를 기억하게 하는 영화이자, 용산 참사가 특정한 누군가가 겪은 참사일 뿐 아니라 상처 입고 상처 입힌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영화, 관객 각자의 이야기로 파고들어 치유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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