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사 시민기자의 청소년노동인권이야기 <9>

이로사씨는 청소년인권복지센터 ‘내일’의 ‘일하는 청소년 지원 팀장’이며 중부청소년근로권익센터 상담원으로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과 상담, 권리구제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9년에 결성된 인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청소년 노동인권 상담을 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냅니다.

▲ 이로사 시민기자
얼마 전 퇴근 후 동료들과 저녁을 먹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사업주가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자고 하는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며 문자메시지로 사진을 보낼 테니 봐달라는 것이었다. 새해 들어 최저임금이 바뀌고 근로계약서 작성에 관한 문의가 많았다. 그 중에 하나인데 목소리가 살짝 나이 들어 보였다. 청소년이 아닌데도 가끔 이렇게 궁금한 게 생겨 전화하는 어른이 있다.

“6개월 전부터 일했고요, 근로계약서는 처음부터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해가 바뀌니 사장이 갑자기 근로계약서에 사인하라고 하네요. 이것 좀 봐주세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요. 말도 안 되는 거 맞지요?”

어떤 곳에서 일하고 있는지, 하루 근무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앞뒤 설명 없이 이렇게 근로계약서부터 봐달라고 하면, 참 난감하다. 종이와 펜을 놓고 내가 먼저 하나하나 물어가며 짚어봐야 하지만 밥 먹다 말고 상담이라 좀 난감했다. 그래도 당사자는 얼마나 머릿속이 복잡하면 이러랴 싶어 한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사진으로 보낸 근로계약서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평일 근로시간은 8시간. 여기다 토요일에 4시간 근무하고, 연장근로를 주 6일 2시간씩 총12시간을 한다. 주당 56시간 근무였다. 뭐 이렇게 많이 일 하나 싶었다. 하긴 4인 이하 소규모 서비스 업종에선 흔한 근무시간이다.

내담자는 전체 근무시간에 시급을 곱하면 임금이 평소 받는 것보다 많다며 사장이 이럴 리 없는데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하소연했다. 평소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늘 손님이 있어 밥을 먹으면서도 근무했던 터라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새해 들어 갑자기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하니, 의심한 것이다.

그 근로계약서를 들여다보니 참 애매한 내용이 많다. 기본급이라고 써놓은 금액은 170여만원으로 최저임금을 상회하는데 수당이 터무니없이 적다. 하지만 4인 이하 사업장이니 근무시간 외에 더 근무하더라도 1.5배의 수당을 받기는 힘들다. 야간이나 휴일 근무에 대한 1.5배 가산규정도 예외다.

기본급과 제 수당을 합친 걸 전체 근무시간으로 나누어보면, 최저임금 7530원이 딱 나오는 근로계약서였다. 계약서상으로는 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닌데, 실제 근무했을 때 초과근무가 늘어나면 법을 위반하게 되는 근로계약서다. 5인 이상 사업장이었다면 당연히 받았을 1.5배의 수당을 4인 이하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못 받는 현실에서 좋은 근무조건은 아니었다.

“계약서상으로는 법 위반이 아닌데 좋은 근무조건은 아니에요. 잘 생각해보시고 사인하셔야 할 것 같아요. 조금 더 큰 사업장으로 가시면 당연히 초과근무 수당을 받는 건데, 사업장이 작아서 못 받고 있으니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좀 억울하겠네요. 그리고 그동안 쉬는 시간을 제대로 못 쉬었다고 했잖아요.

그것은 근무일지를 따로 기록해뒀다가 쉬지 못한 시간에 대해 임금을 청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할 수 있어요. 이번에 근로계약서를 처음 작성하는 것이니 쉬는 시간을 확보해보세요. 그런 요구를 말로만 하면 근거가 남지 않아요. 대화를 녹음하지 못할 상황이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통화하시면서 녹음하시고요. 어떤 방법이든 나중에 증거로 활용할 수 있게 해보세요”

내담자의 얼굴도 안 보고 참으로 어려운 안내를 했다. 근로계약서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전화로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런 내용을 청소년시기에 교육받지 못하니 성인이 돼 사회생활을 많이 해도 근로기준법 기본이해가 부족하고, 그다지 까다로울 것도 없는 법률 용어 앞에서 주눅 드는 것이다.

4인 이하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아무리 많은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을 제대로 못 받는 현실을 하루빨리 바꿔야한다. 사업주가 영세해 감당하기 어렵다면, 사회적 보완책이라도 만들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개선해야한다. 초과근무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는 영세한 사업체가 얼마나 많은가? 또, 그런 사업체에서 힘든 노동을 지속하는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근무조건을 스스로 개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걸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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