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평론]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지음|어크로스 출판| 2018.1.5.

나이 들어 벗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대체로 자녀들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진다. 어느 대학을 들어갔는지, 어디에 입사했는지 물어보기 바쁘다. 지난번에도 그랬다. 자녀들이 무엇을 하는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짜고 있는지 서로 묻다가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아무개는 딸에게 남자친구 있느냐고 물었다가 한마디 들었단다. 그냥 친구 있느냐고 물어야지 꼭 짚어 남자친구 있느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동성을 사랑할 수도 있는데 오로지 이성을 전제한 말은 옳지 않다는 뜻이었다.

불편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주고받는 일상대화에 그 정도까지 여러 상황을 감안해야하는가 하고 말이다. 더욱이 자식들이 평소 부모에게 말할 때 그 정도로 예민하게 판단하고 말해왔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

 
자기들은 함부로 말하면서 어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싶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불편한 거 자체가 올바른 태도가 아니겠구나 싶었다. 아무리 동성애에 개방적 태도를 보이고 있으면 무엇 하겠는가.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에 상대방의 성 정체성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자체가 문제구나 싶었다. 나이 들어서 일까, 이제는 자식들이 더 낫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홍성수의 ‘말이 칼이 될 때’를 읽으면서도 안이한 태도를 많이 반성했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이른바 혐오 표현을 주제로 다양한 논의를 펼쳤다. 지은이는 혐오를 “그냥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차별하고 배재하려는 태도”라고 정의했다.

‘혐오 표현은 당연히 옳지 못하다’라고 하면 될 문제인 듯하지만, 의외로 복잡하다. 혐오 표현을 규제하려하면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구체적 범죄행위가 아니라 표현을 문제삼다보니 쉬운 문제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보편적 권리이자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중요한 기본권”인데, 설혹 “일베나 여성혐오가 문제라는 점에 동의하더라도 그것이 표현에 머물러 있는 한 쉽게 규제카드를 꺼내들 수 없다”는 말이다.

지은이는 도덕적 또는 철학적 딜레마를 어떻게 빠져나갈까? 사실 이 책을 읽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혐오 표현이 몰고 오는 해악은 크게 세 가지다. 혐오 표현에 노출된 소수자 개인이나 집단이 정신적 고통을 당한다는 점, 누구나 평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공존의 조건’ 파괴, 혐오 표현이 실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 눈여겨볼 점이지만 특히 세 번째 해악을 주목해야한다. 지은이는 이를 혐오의 피라미드라 했는데, 그 부정적인 확산 과정은 다음과 같다.

“편견을 밖으로 드러내면 그것이 바로 혐오 표현이다. 편견은 고용, 서비스, 교육 등의 영역에서 실제 차별로 이어지기도 하고, 편견에 기초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자는 ‘차별행위’이고 후자는 ‘증오범죄’라고 불린다. 어떤 소수자 집단에 대해 차별을 말할 수 있고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회에서는 그들에게 집단적인 린치를 가할 가능성도 생긴다. 이는 제노사이드와 같은 대규모 인권침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혐오 표현 단계에서 제재해야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이다.

지은이는 ‘남혐’이나 ‘개독’과 같은 표현은 혐오 표현이 아니라고 명토 박는다. 혐오 표현은 차별을 재생산할 때 성립하는데 남성이나 기독교 같은 다수자에게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혐오 표현은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해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ㆍ혐오하거나 차별ㆍ적의ㆍ폭력을 선동하는” 것을 이른다. 표현의 자유가 소수자의 영혼을 죽이는 칼이 된다면, 혐오 표현은 제한돼야 마땅할 터다.

되돌아보면, 우리 사회에 혐오발언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행태를 보면 도를 한참 넘어섰다. 각별히 여성혐오나 동성애혐오는 심각한 상황이다. 아름다운 말로 서로 격려하고 사랑을 나누기도 시간이 부족하다. 세치 혀로 누군가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내서야 되겠는가. ‘말이 칼이 될 때’를 함께 읽고 반성하고 변화하자.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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